컨테이너선 시장은 회복 전망…해운시장 반등은 2018년에나

국내 해운업계에는 악몽 같은 한해였다. 국내 1위 해운사로서 39년간 한국 해운업을 이끌어오던 한진해운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진해운은 지난 8월 말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서 요구한 부족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내 해운업의 유일한 보루는 현대상선이다. 정부는 지난 6월 '해운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현대상선으로 메우겠다고 발표했다. 신규 선박 발주를 지원해 현대상선을 국제 해운사로 키워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업계는 해운 '치킨 게임(충돌을 감수하는 극단적인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 사세가 작은 현대상선이 향후 2~3년 안에 국내 해운업 ‘소년가장’ 역할을 해내기엔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현대상선은 꼭 살린다”는 메시지를 국제 해운동맹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년 시작되는 현대상선 체질개선 작업도 ‘백약이 무효’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한진해운은 청산, 현대상선은 2M 가입 실패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회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 미래를 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가 “청산 결정을 내린 적 없다”며 ‘희망고문’을 이어가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청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진해운 선박 대부분이 처분됐고 해운 핵심인력은 내년 1월 삼라마이더스(SM)그룹으로 흡수된다.

당장 내년 한진해운이 국내 해운시장에서 이탈하게 되면서 현대상선 어깨가 무거워졌다. 한진해운 그늘을 벗어나 국내 해운업계 맏형 노릇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현대상선도 산업은행 지원 덕에 경영난을 버텨낸지라 이 같은 상황은 다소 버겁다. 정부는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길러낼 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 정부는 '해운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부채비율 400% 이하 기준을 충족시키는 선사에 한해, 신규 선박 발주를 지원하는 '선박 신조(신규 건조) 지원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현재 세계 13위인 현대상선을 5년 후 세계 7~8위권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12일 현대상선은 2M과 3년 간 전략적 제휴를 맺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그러나 현대상선은 이 같은 정부 ‘장밋빛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대상선은 12일 2M과 선복교환 + 선복매입’의 제휴관계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기대됐던 ‘선복공유 + 선복교환’ 형태 계약이 아니다. 2M은 세계 1, 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로 구성된 세계 최대 해운동맹이다. 현대상선으로서는 회생을 위해 방대한 영업망을 공유하는 2M 가입이 필수적이다.


씨인텔리전트컨설팅의 라르스 옌센 최고경영자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사로 미래를 보려면 얼라이언스 가운데 한 곳과 강력한 선박공유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느슨한 협력은 시장 상황에 따라 무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2M이 선복공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상선 미래 성장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2M 회원사들이 한진해운 몰락 이후 현대상선을 포함한 한국 해운사 가입을 꺼리고 있다. 이에 2M 경영진이 현대상선을 무리하게 회원사로 가입시킬 시, 기존 회원사와의 신뢰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13일 익명을 요구한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굴욕적인 협상이다. 현대상선은 2M 아니면 협상을 시도할 수 있는 동맹체가 없었고, 결국 ‘껍데기 동맹’이라도 맺어 급한 불만 끈 것”이라며 “선복공유도 되지 않고 계약기간도 3년으로 짧다. 협상 내용을 요약하면 현대상선은 2M의 정식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한 ‘땜빵 선사’가 된 것”이라고 협상결과를 평가절하 했다.

◇ 떨어진 신용, 내년 정부 ‘액션’ 중요해

현대상선은 2M과의 협상결과가 낙제점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다소 느슨한 계약이지만, 2M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통해 반전 기틀을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해외터미널 인수, 2020년 환경규제에 따른 선박발주 기회 확보 등을 위해서라도 3년간의 단기협약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은 향후 2~3년간은 사세를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2018년까지 예상되는 초과 공급에 의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설명이다. 선박신조는 당장 내년부터 추진한다. 이를 위해 13일 ‘선박신조검토협의체(가칭)’를 구성했다.

선박신조검토협의체는 내년 선박신조를 위한 시장상황 분석 및 조선소 검토, 선형별 소요량 산정 등을 내년 초까지 확정해 투자심의를 거친 후 선박을 발주할 계획이다. 검토 대상은 반선 또는 폐선 예정인 컨테이너선 대체선박과 소형 컨테이너선을 비롯해 친환경 선박 등이다.

현대상선은 2M과 협력하는 지역의 대형 선박을 제외하고 반선되거나 폐선되는 선박의 대체 선박을 발주할 계획이다. 또한 벌크선 경우 경쟁력 있는 초대형 유조선(VLCC)을 내년 중으로 발주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신흥국 위주로 경기가 살아난다면 교역량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현재 낮은 운임으로 이익을 창출하려면 연료 효율이 뛰어난 선박을 신조하는 게 필수다. 다만 교역량에 맞춰 물동량이 비례해 늘어날지 예측할 수 없고, 컨테이너선 시장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변수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내년 세계 경기회복이 예측된다. 교역량도 늘고 컨테이너 물량은 5% 정도 증가할 것”이라며 “그런데 물동량 흐름이 같이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그 언더(under)라면 해운경기는 악화될 수 있다. 벌크선 시장은 올해가 바닥이었기에 내년은 조금 나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상선의 체질개선 작업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점친다. 즉, 선박신조를 통한 선대 대형화와 재무구조 개선작업 효과가 당장 수년 안에 빛을 보기에는 글로벌 경기침체 늪이 깊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장 내년 국내 해운업황은 올해보다 나아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결국 일본 해운3사가 컨테이너 부문 통합을 완료하는 2018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내년 세계 해운시장에 “현대상선만은 어떻게든 키운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상선이 2M 가입에 실패한 주요 이유로 지목된 ‘한국해운업에 대한 불신’을 지워내지 못하면, 내년부터 진행되는 현대상선의 회생작업이 무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인호 부산항발전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해운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국제적인 화주 네트워크와 신뢰를 한꺼번에 잃게 됐다”며 “이렇게 되면 현대상선을 포함해, 고려와 흥아해운 입지까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의 해운동맹에 들어갔더라도 향후 한진해운의 입지까지 올라가려면 앞으로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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