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전기차 포함 하이브리드·EREV 투자 확대
전환 더딘 업체들 “사업 전동화 전환 시간 벌었다”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중소 업체들이 전기차(BEV) 시대를 앞두고 어렵게 사업 전환을 추진하던 중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탓에 한숨 돌린 모양새다.
6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7월 국내 전기차 신차 판매 대수는 7만9901대로 집계됐다.
전년동기(9만2878대) 대비 14.0% 감소한 수치다. 해당 기간 국산차가 7만6869대에서 4만8336대로 37.1% 줄었고, 수입차는 1만6009대에서 97.2% 늘어난 3만1565대를 기록했다. 국산차는 현대자동차, 기아, KG모빌리티의 수요 감소로 인해 줄었다. 수입차 업체들도 대부분 판매 감소에 처했지만 신차, 프로모션을 앞세운 테슬라가 판매고를 늘려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국산 전기차 판매 감소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실적에 악영향을 끼친다. 중소 부품 업체들이 내수용 전기차의 부품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차량이나 해외 브랜드의 외국 판매 모델은 다른 공급망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요 증가의 수혜를 얻는 국내 부품 업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도 캐즘 영향을 비켜가지 못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개사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일제히 두자리수 비율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대모비스도 전력 변환, 구동, 배터리 시스템 등을 공급하는 전동화 사업에서 전년동기 대비 반토막난 매출을 기록했다.
배터리 열관리 사업을 영위하는 한온시스템은 매출을 전년동기 대비 4.1% 늘렸다. 하지만 내연기관차 시장 수익이 포함된 수치고, 전기차 관련 시설투자를 단행한 결과 영업이익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국산 전기차 수요가 위축되고 중국산 전기차가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 처하면 부품 업계가 취약해질 수 있다”며 “전동화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중소) 부품 업체는 내연기관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더욱 어려워져 자칫 해외 기업으로부터 입지를 위협받을 수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완성차 공급망의 키를 쥔 현대자동차그룹은 캐즘 속 고심 끝에 최근 전동화 사업 계획을 대거 수정했다. 신규 중장기 사업 전략 ‘현대 웨이’의 일환으로, 향후 전기차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내연기관을 접목한 친환경 차종을 개발,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는 2033년까지 92조7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중소 부품업체들 사이에서는 캐즘과 현대차그룹의 사업 계획 수정 덕에 “한숨 돌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체들이 자금, 인력 확보가 어려운 탓에 전동화 전환을 더디게 추진해왔지만, 최근 달라진 업계 흐름 속에서 사업 전환을 가속할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브리드차, EREV 등 친환경 차종은 전기차와 달리 기존 내연기관 기술을 응용해 개발되기 때문에 부품업계의 대규모 신규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하기 전 “캐즘 덕에 전동화 사업 전환에 필요한 기간을 벌었다”는 반응이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국내 부품업체의 수익성이 오히려 향상된 점도 부품업계에 여유를 주는 요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최근 수년간 국내 증시 상장한 자동차 부품 85개사의 연결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영업이익률이 1분기 4.3%, 2분기 4.8%로 집계됐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2020년 1.7%에서 매년 상승해 지난해 4.2%까지 올랐다.
업계 수익성 강화는 그간 전기차와 함께 내연기관차 수요가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업체들은 전기차 시대에 발맞춰 전동화 부품 제조 시설 설립 등 투자를 단행하면서도 재원 확보를 위해 기존 내연기관차 부품 사업을 유지했다. 앞서 성장하던 전기차 시장 안에서 사업 전환에 조바심 내던 부품업체들이 캐즘과 현대차그룹 사업 변화에서 성장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현승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는 “전동화 시설에 투자한 업체들은 전기차 판매가 다시 증가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부품업체들이 기존 내연기관 사업 역량을 응용해 하이브리드, EREV 등 차종에 관한 부품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글로벌 자동차 산업 3강’을 목표로 제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전기차, 소프트웨어정의차량(SDV) 등 미래차 공급망 안정을 취지로 마련한 미래차부품산업법을 시행했다. 내년 자동차 산업 지원 예산을 올해 대비 12.8% 늘린 4990억원으로 책정하고 연구개발, 세제감면, 보조금, 충전 인프라 확충, 부품사 지원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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