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이사회 시작···오후 정기 임원 인사 발표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내년도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롯데그룹이 칼을 빼 들었다. 임기 만료를 앞둔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과 정준호 롯데백화점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그룹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성과주의’ 기조를 강조해온 신동빈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롯데그룹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유통군 핵심 인물 교체···실적 감소가 원인
신동빈 회장은 올 하반기 VCM(옛 사장단 회의)에서 그룹 실적을 냉정하게 평가한 후 주요 경영지표 개선을 위한 선결 과제로 핵심 사업에 대한 ‘본원적 경쟁력 회복’을 강조해왔다. 신 회장은 “미래 예측에 기반한 전략 수립과 신속한 실행력 확보”를 당부했던 만큼, 이번 정기 임원 인사는 성과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다.
롯데는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전체 36%에 달하는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한 바 있다. 일명 유통 3인방으로 불렸던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 겸 롯데그룹 유통 총괄대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는 지난해 인사에서 나란히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는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롯데쇼핑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2.8% 줄어든 10조2165억원, 영업익은 2% 감소한 3194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영업이익은 22.9% 늘어난 2707억원이었지만, 매출은 1.2% 줄어든 2조2958억원으로 집계됐다.
김상현 부회장은 지난 2021년 첫 외부 인사 대표로 영입된 뒤 한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취임 후 ‘그로서리 1번지’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온라인 그로서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김 부회장은 2030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을 도입한 자동화 물류센터 6개를 건설하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내년 상반기 오카도 첫 물류센터가 가동돼야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정준호 대표도 롯데백화점 최초 외부 인사다. 정 대표는 백화점·아웃렛 조직 분리 등을 실시하고 잠실점·본점·인천점 등 주력 점포 리뉴얼을 단행했다. 또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도 매출액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 대표가 3년간 준비해 선보인 미래형 프리미엄 쇼핑몰 타임빌라스가 당초 계획과 달리 추가 출점이 지연되는 등 외연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롯데에 따르면 정현석 롯데아울렛 대표가 롯데백화점 새 대표로 선임될 예정이다. 정 대표는 1975년생으로, 25년간 롯데에 재직한 롯데맨으로 통한다. 그는 2000년 롯데쇼핑에 입사한 뒤 롯데백화점 고객전략팀장, 롯데몰 동부산점장 등을 거쳐 2020년 에프알엘코리아(유니클로 운영사) 대표에 올랐다.
정현석 대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유니클로의 한국 사업을 구조조정과 온라인 강화로 정상궤도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매장을 과감히 정리하고 온라인 채널과 수익성 높은 점포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 2020년 대규모 적자에서 1년 만에 흑자를 냈다. 이후 2022년에는 매출, 영업익 모두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다.
유통업계에선 롯데의 유통 인사 기조가 ‘내부 발탁’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평가한다. 최근 몇 년간 롯데는 외부 출신을 수장 자리에 앉힌 바 있다. 또 롯데는 유통업계 기조에 맞춰 젊은 대표를 수장으로 올려 신 회장이 강조한 ‘본원적 경쟁력 회복’에 힘을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매년 승진했던 신유열, 보직 변화 여부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부사장의 승진 여부도 관심사다. 신 부사장은 2020년 일본 롯데 입사를 시작으로 2022년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 2023년 롯데파이낸셜 대표이사, 지난해 롯데지주 부사장으로 잇따라 승진했다.
신 부사장은 거의 해마다 직급이 올랐던 만큼, 올해도 승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올해 유통업계 오너 3·4세들이 주요 보직을 맡아 경영을 이끌고 있다. 신 부사장 역시 그룹의 미래 성장 전략을 주도하는 미래성장실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추가 권한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무게가 실린다.
특히 신유열 부사장이 바이오·헬스케어·디지털 신사업 등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온 신성장 축과 연관성이 높은 직책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사실상 신 부사장이 경영 승계를 이어받는 것을 공식화하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