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현대제철, 신용도 방어했지만 ‘관세·대규모 투자’ 이중 부담
글로벌 신평사, 포스코·포스코인터 ‘부정적’···철강 업종 전반 하방 압력
중국 감산·반덤핑 효과 예상되지만···회사채 시장, A급 중심 양극화 심화

포스코 포항제철소 후판 생산 공정. /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후판 생산 공정. / 사진=포스코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과 중국 경기 둔화, 전방 산업 침체가 겹치며 철강업계의 신용도는 올해도 개선 여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방산과 달리 철강은 수요 부진과 비용 부담이 겹치며 여전히 회복까지 시간이 필요한 업종으로 평가된다. 국내 주요 철강사의 재무지표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신용평가사들은 내년에도 등급을 끌어내리는 위험 요인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무디스와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공동 브리핑에서 “내년까지 글로벌 저성장·중국 부진·보호무역주의가 국내 산업 전반의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석유화학·건설·철강·이차전지를 가장 취약한 업종으로 지목했다. 원화 약세도 철강업에는 부담 요인이다. 달러로 원료를 구매하는 업종 특성상 가격 탄력성이 낮아 환율 상승이 곧바로 재무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 포스코, 글로벌 신평 첫 ‘부정적’···철강·2차전지 모두 압박

철강 업종 전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포스코 그룹의 글로벌 신용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3월 포스코홀딩스·포스코·포스코인터내셔널의 등급 전망을 모두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국내 신평 3사가 모두 AA+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신평사가 먼저 ‘경고등’을 켠 셈이다.

S&P는 “포스코홀딩스의 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대규모 투자비 지출로 1.5배를 넘어섰다”며 “철강 부문의 영업 환경이 여전히 약세인 가운데 2차전지 소재 사업도 전기차 수요 둔화와 리튬 가격 약세로 적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철강 수요가 4년 연속 줄어든 가운데 포스코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도 주요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포항·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안전관리 비용이 증가하면서 생산량이 줄거나 수익성이 떨어지면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철강업 보고서에서 “안전사고 발생 시 규제 강화 및 설비투자 확대가 불가피해 비용 구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향후 반등 여지도 있다. 내년 글로벌 철강 수요가 확대되고 중국의 감산 정책이 본격화되면 수익성 회복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K-스틸법’ 추진도 불확실성 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평가된다.

현대제철 인천공장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인천공장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 현대제철, ‘AA 안정적’ 유지···지표는 ‘간당간당’

현대제철은 국내 신평사 세 곳 모두 AA(안정적)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세부 지표만 보면 안정적으로 등급을 유지하기엔 여유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신용평가가 올해 8월 발간한 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EBITDA/매출액은 9%, 순차입금/EBITDA는 4배 수준이다. 등급 상향 요건(EBITDA/매출 12% 이상, 순차입금/EBITDA 2.5배 미만)과 비교하면 여전히 거리가 있는 수치다.

실적 개선 속도도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건설 경기 침체로 봉형강 수요가 위축되고, 판재 부문 역시 냉연·열연 가격 인하 압력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제한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미국의 50% 철강 관세가 본격화하면서 현대제철 역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문제는 미국 전기로 제철소 투자다. 총 58억달러(약 8조원) 규모의 투자가 2026~2029년에 걸쳐 집행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차입 부담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신평사들은 “공동 투자 구조가 부담을 분산시키더라도 투자 지분 구조에 따라 현대제철의 재무지표가 변동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세아제강 미국법인(SeAH Steel USA) 공장 내부. / 사진=세아제강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세아제강 미국법인(SeAH Steel USA) 공장 내부. / 사진=세아제강

◇ 동국제강·세아제강, 관세 리스크 직격탄 우려

세아제강은 A+ 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회사채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높아졌다. 지난 4월 진행된 수요예측에서는 800억원 모집에 5700억원이 몰리며 금리도 민평 대비 20bp 이상 낮게 형성됐다.

다만 신평사들은 세아제강의 높은 미국 의존도를 가장 큰 리스크로 본다. 세아제강의 미국향 매출은 전체 매출의 38%를 차지한다. 미국의 50% 관세가 적용되면서 수익성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강관·표면처리강판 중심의 세아제강 사업 특성상 가격 방어 여력이 크지 않은 점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동국제강은 현재 회사채 신용등급이 없다. 지난 2022년 이후 국내 신평 3사가 등급 부여를 취소했고, 시장 조달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은행 차입 중심의 재무 구조가 고착됐다. 직전 무보증사채 등급은 BBB+로 투기등급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회사채 시장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 상호관세 충격이 철강업 전반을 짓누르는 상황에서 동국제강처럼 해외 매출·영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은 업황 변동성에 더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4열연공장에서 완성된 철강제품 모습. /사진=연합뉴스
포스코 광양제철소 4열연공장에서 완성된 철강제품 모습. /사진=연합뉴스

◇ 업황은 ‘반등 조짐’···회사채 시장, A급 중심 쏠림 심화

철강 업황은 완만한 회복이 예상된다. 세계철강협회(WSA)는 내년 글로벌 철강 수요가 올해 대비 1.3%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예상에도 불구하고 전력망·인프라 중심의 정부 투자 확대와 감산 기조가 수급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도 반덤핑 효과가 본격화되면 열연 가격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조선·자동차 등 전방산업은 안정적 수요처로 유지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신평사들의 시각은 ‘보수적’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보고서에서 철강 업종의 핵심 리스크로 ▲중국발 공급 과잉 ▲전방 산업 침체 ▲ESG·투자비 확대에 따른 차입 부담 ▲통상 리스크 증가 등을 제시했다.

철강업 전반의 신용도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형사는 회사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지난 9월 진행한 1500억원 수요예측에는 6300억원이 몰렸다. 세아제강도 대규모 주문을 확보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업황 회복의 신호로 해석하기 보다는 A급 이상 대형사에 대한 선별적 수요”라고 해석한다. 업황 불확실성이 큰 만큼 신용이 확실한 기업 중심으로만 자금이 몰린다는 뜻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종 전반의 신용 위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내년부터 투자부담이 커지면 지금보다 더 엄격한 시장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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