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력단절 해소·남성 육아휴직 확대 등 필요”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서울에 사는 직장인 임모씨(39)는 30대 중반에 들어설 즈음 비혼을 선언했다. 아쉬운 만남을 거듭하다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다보니 인연에 대한 의지가 약해졌다. 한국에서 육아부담이 남녀에게 공평하게 지워지지 않는 점도 비혼주의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세 자매 중 막내인 임씨는 먼저 시집간 언니가 육아도 하고 있어 부모나 집안 어르신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결혼 후 여성은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때로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의 일상이나 뉴스를 통해 혼인, 육아의 현실을 접할 때마다 아쉽거나 답답함도 느낀다.
임씨는 “남녀 모두 평등하게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이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Q. 결혼, 육아를 고려하던 때 가졌던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서 결혼 한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랬다. 결혼하면 나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생긴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결혼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Q. 비혼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마음을 먹은 결정적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경험이 쌓이며 점차 결심을 굳히게 됐다. 비혼주의자로 살아야겠다고 결정 내린 것은 30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결혼은 어쨌거나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 ‘기성세대의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 편입되기 힘들겠구나, 그러려면 많이 싸워야겠구나’ 싶었다”
Q. 무엇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나
“한국 사회에서는 그간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가사 부담을 더 많이 짊어지고 경력 단절을 겪어왔다고 본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맞벌이 부부인데도 가사 부담을 더 많이 감당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매 맞는 아내들의 사례마저 접했다. 또한 소설을 통해서도 맞벌이 아내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렇게 살 바에 스스로 경제력을 갖추고 혼자 사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Q.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지인 중 한 명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가사를 전담하기 위해 그만뒀는데, 이후 남편과도 이혼하고 이전 경력마저 이어가지 못해 어렵게 지내고 있다. 아이가 있으면 더욱 고달파질 것 같다. 부부가 함께 육아하는 것도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한 너무 힘든데 홀로 맡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Q. 한국 사회가 성별에 따라 차별한다고 보나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은 있다. 맞벌이를 하는 남편이 ‘너는 나보다 돈을 덜 버니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하라’는 식으로 나오면 그 이후 일상의 모든 일에 대해 사사건건 부딪힐 것 같더라. 남편과 주말 부부로 지내던 공무원 친구가 주 양육자로 지내던 중 쓰러지기까지 했단 소식을 들었다. 너무 놀란 동시에 슬펐다. 그런 식으로 나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Q. 비혼주의를 선언한 배경에 한국의 제도가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는지
“결혼을 고려하던 시기에는 내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제도나 정책을 따져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간 타인의 일상을 접하고 나서 이런 제도가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선 남녀 모두 육아에 임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Q. 누가, 어떻게 도와야 할까
“회사에서 각종 육아 지원책을 제공하거나,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여초(女超) 대기업에 근무하던 지인은 육아휴직을 썼다가 해당 팀의 인사평가가 저조해진다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받았다고 한다. 여성이 다수 근무하는 대기업이 이런데, 그보다 작은 기업의 직원들이 아이를 낳고 잘 기르고 싶겠나. 내 한 몸 부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Q. 경력단절 여성을 더욱 강력히 지원한다면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남녀 모두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 일과 가사를 함께 분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결국 남녀가 동등한 잣대로 평가받고 의무도 수행하는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보는데, 실현될 수 있을까 싶다”
Q. 저출산을 해결하기에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도 저출산 대책의 하나라고 본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연간 태어난 아이 10명 중 1명이 태어나자마자 방치돼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그런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미혼모를 함께 고려한 육아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나는 나이가 이제 비교적 많아졌기 때문에 출산이 쉽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고, 소득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등 여건이 되면 입양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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