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불안감·직장 스트레스에 베트남 이민 선택
출산율 높은 국가인 만큼 아이들 활동에 너그러워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다. 절을 바꿀 수 있다면야 그 자리에 남아 입맛에 맞게 수리하고 고쳐야 하겠지만, 방도가 없다면 굳이 대상을 바꾸려 말고 본인이 떠나야 한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단 의견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의 육아 어려움에 이민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김일구(38세·가명)씨도 이 중 한 사람이다. 김 씨는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녔지만 높은 업무 강도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을 옮겼고 베트남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았으며 베트남 삶에 높은 만족도를 느끼면서 결국 이민까지 선택하게 됐다. 현재는 두 아이의 아빠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 씨는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첫째를 낳고 둘째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베트남이 한국보다는 후진국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은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Q. 베트남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 피로도가 너무 컸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들었지만, 10년전만 해도 매일 야근을 해야 했으며 끝나고 회식까지 하면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풍족하게 생활할 정도의 연봉도 아니었으며,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당시 부장급이나 임원들을 보고 있으면 저들처럼 살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그들도 미래가 보장된 생활은 아니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책상을 빼버리거나, 이상한 곳으로 보직을 바꾸는 등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단 불안감이 컸다.
언제 갑자기 직장에서 잘릴지도 모르는데다, 회사 내에서의 경쟁도 너무 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결혼 후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도저히 이런 환경에선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최소 20년은 더 일을 해야 하는데 이같은 상황을 20년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베트남에서 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리프레시를 하기 위해 고민 끝에 베트남행을 택했다.
베트남에서 워라벨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도 적어 현재는 만족하면서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 혼자만 베트남에서 일을 하고 다른 가족들은 한국에서 살았지만, 이곳 생활에 높은 만족도를 느끼며 다른 가족들을 설득해 현재는 다같이 와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데 자신이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경제적 안정성이 뒷받침되면서 둘째까지 낳게 됐다”
Q. 베트남에서 육아할 때 한국보다 나은 점은 무엇인가
“베트남은 출산율이 높은 국가로 어딜 가도 아이들이 많다. 그만큼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한국은 내가 살던 시절만 하더라도 한참 ‘노키즈존’이 유행할 만큼 아이들에게 각박했다. 물론 남한테 피해가 갈 정도로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들이 문제였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집에서 놀 때도 층간소음 때문에 항상 신경이 쓰였고, 아이들을 단속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라고 여겨졌다. 아이들의 행동이 과한 점도 있겠지만 사소한 소란에도 민감한 주변 시선 때문에 육아에 대한 부담이 컸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아이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다. 다소 아파트에서 시끄럽게 굴더라도 핀잔을 주는 일도 없고, 노키즈존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눈치를 보는 일이 없어 육아에 부담이 없다.
현재 베트남은 인구 1억명을 넘겼으며, 출산율도 지난 2022년 기준 2.01명으로 0.72명인 한국과 비교하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는 “특히 남자 아이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활발한데, 베트남의 이같은 문화가 육아를 할 때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더 편하게 느껴졌다.
지금 베트남을 보면 딱 내가 어렸을 때인 80~90년대 한국의 모습과 닮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도 딱히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으며,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Q. 베트남 육아의 단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의료 부분이 제일 크다. 의료 시설이 한국보다 낙후된 느낌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정에서 직접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대신 영어나 베트남어 등 외국어를 배우기에는 용이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선 장점이 있다”
Q. 한국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에 사는 또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제 막 결혼하고 첫째를 낳아서 키우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것 같다. 워라벨은 좋아졌다지만, 집값이 급등하면서 직장인 월급만으로는 집을 구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전세 사기다 뭐다 해서 전세도 마음 놓고 구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경제적으로 팍팍하다보니 다들 아이를 갖는데 부정적이었다. 같이 근무를 했던 직장 동료들도 이제 승진해서 차장, 과장이 됐지만 오히려 연봉은 나보다 낮았다. 나같은 경우 회사에서 베트남 집을 구해줬기 때문에 집값에서도 자유로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한국에서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집값을 해결하지 못해 육아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이들을 보니 과거 경제적 불안감에 한국에서 벗어났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한국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저출산 정책을 내놔도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한국에 들어와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다들 똑같다. 아이를 낳기 싫어서 안 낳는게 아니라,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육아까지 부담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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