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호조는 일시적 현상…"정부는 연구지원이나 대출특혜 없애야"

LG화학이 생산하는 고부가석유화학제품 ABS(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사진=LG화학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업계 호황을 이끈 건 에틸렌(Ethylene)이다. 에틸렌은 기초범용소재다. 약간 공정을 거치면 계면활성제, 기초용매, 화학섬유로 응용할 수 있다. 에틸렌 국제 평균 가격은 2015년 톤당 605달러선에서 2016121101달러로 급등했다. 수익성도 좋아졌다. 에틸렌은 원유에서 추출한 납사(Naptha)로 만든다. 에틸렌-납사 스프레드 역시 상승세다. 지난해 11월 톤당 539달러에서 12월 평균 658달러를 기록했다. 에틸렌-납사 스프레드는 에틸렌 가격에서 납사 가격을 뺀 값으로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에틸렌 호황이 계속되자 국내 화학업계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납사분해설비(Naptha Cracking Center)를 증설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은 대산NCC공장을 증설해 생산량을 104만톤에서 127만톤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역시 여수NCC공장 설비를 연간 100만톤에서 120만톤으로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때 아닌 호황에 증권가와 석화업계는 앞다퉈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고 있다. 경기를 타는 석화업이 회복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화학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던 베인앤컴퍼니(Bane& Company) 컨설팅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은 화학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부요인 덕에 찾아온 일시적 호황, ‘알래스카의 여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화학업체가 잘한 게 아니다…외부요인 덕이 커

 

전문가들은 지난해 석유화학업계 호황 원인으로 저유가 선진국 석화업계 구조조정 기후협약을 꼽는다. 셰일가스 분해설비는 NCC보다 더 많은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원료를 채굴하는데 석유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야 수지 타산이 맞는 공정이다. 지난해 11월 감산합의가 있기 전까지 유가는 30달러에서 40달러선을 유지했다. 중동은 천연가스를 활용해 NCC대비 절반에 가까운 비용으로 에틸렌 제품군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미국 셰일가스 설비 확대와 글로벌 경기침체가 맞물렸다.

 

비산유국인 일본은 지난 2014년부터 석화업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46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한다. 업계 자율 구조조정을 통한 범용제품 설비 축소와 고기능 사업분야 전환 유도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일본 규모 1위기업인 미쓰비시케미컬은 NCC 노후설비를 폐쇄하는 한편, 탄소소재, 정보전자소재, 연료전지 등 신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석탄에서 에틸렌을 만들 수 있는 석탄기반설비(Coal to OlefinCTO)를 운영하는 국가다. 하지만 파리기후협약, 대기오염에 따른 주민 반발 등으로 지난해 석탄 생산을 줄이면서 CTO가동도 줄였다.

 

세 가지 외부요인은 모두 공급 축소로 연결된다. 석화업계 생산이 줄면서 경쟁자가 줄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공급과잉이 벌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종우 화학경제연구원장은 여러 대외요인이 호황을 이끌었다라며 결코 한국기업이 잘해서 호황이 찾아온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2017년 하반기부터는 ECC가동이 본격화되고 한국산 석화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도 자급률을 높인다라며 일시적 호황에 눈이 멀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범용제품 과당경쟁 축소해야M&A도 한 방법

 

국내 화학기업 규모는 큰 편이 아니다. 2015년 기준 연간 생산량을 보면 LG화학은 세계 11, 롯데케미칼은 28위다. SK41위고 한화는 43위다. 4사 생산량을 합쳐도 세계 에틸렌 생산 1위인 중국석유화공(中国石油化工) 생산량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석유화공 에틸렌 생산량은 2015년 기준 1046만톤에 이른다. LG화학 생산설비는 2015년 기준 127만톤, 롯데케미칼 생산설비는 100만톤이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화학기업 업체수는 많은 개개별 업계 덩치는 작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벤젠과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업체는 9곳이다. 기초유분을 합성해 합성수지를 생산하는 업체는 16곳에 이른다. 남 연구위원은 아시아 석화업체가 2030년에는 3개에서 5개만 남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라며 석화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서 자발적,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무너진다라고 경고했다.

 

남 연구원은 M&A를 통해 중복투자를 줄이고 과당경쟁을 없애자고 말한다. 그는 201512월 이뤄진 기업규모 2위인 다우케미칼(Dow Chemical)10위 듀폰(DuPont) 합병을 예로 들었다. 양사는 합병이 완료되면 농업과 소재과학, 고부가제품 생산 등 3개 분야로 사업을 재편하기로 했다. 양사 연 매출액을 합하면 881억 달러로 세계 1위인 바스프(BASF) 매출액 787억원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현재 업계가 호황인지라 업계 자발적인 구조조정은 어렵다. 남 연구원은 삼성그룹과 한화롯데 그룹 인수합병을 주목해야 한다라며 회사가 가진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설 것을 권고했다. 정 연구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국내 화학업체 설비 경쟁력은 순위권이라며 우수한 설비 경쟁력을 가져가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까지는 석화산업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외요인을 보면 호황이 계속될지는 의문이라며 범용제품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고부가제품 확대에 쓰는 등 사업구조를 고도화해야한다고 말했다.

 

박종우 화혁경제연구원장은 정부 방임을 주문한다. 박 원장은 정부가 해야할 일은 방조나 방임이라며 연구지원이나 대출 특혜를 없애면 회사들이 알아서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고부가 스페셜티는 결국 신 수요 창출수요공급연결, 정부가 할 일

 

폴리케톤과 탄소섬유는 정부가 발주한 R&A로 시작된 석화제품이다. 폴리케톤은 일산화탄소와 올레핀을 합성해 만드는 소재로 나일론보다 강도가 2~3배 뛰어나고 화학물질에도 내성이 있다. 탄소섬유는 탄소함량이 90%이상인 섬유로 강철보다 밀도는 25% 수준인데 무게는 10%에 불과한 차세대 차량 경량화소재다. 그러나 정작 수요가 많지 않아 지난해 8월에는 공장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박종우 화학경제연구원장은 폴리케톤탄소섬유 사례는 결국 정부발 연구타당성 조사가 부족했고 연구과제심사과정도 불투명했단 반증이다라며 수요가 없는 신소재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했다.

 

모든 전문가가 고부가 제품 확대를 대안으로 말한다. 하지만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도 고민해야한다. 남장근 연구원은 수요기업과 소재기업의 연계협력체제를 구축하자고 주문한다. 남 연구원은 자동차-전자-건축 등으로 이어지는 연계과정을 통해 신제품 수요를 파악하고 생산할 수 있게 정부가 창구를 마련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집중된 수출지형도 바꿔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부터 대중국 석화제품 수출 비중은 50%내외다. 정준환 에너지 연구원은 한국 석화산업의 높은 수출의존도를 고려할 때 새로운 수출시장 확보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종우 화학경제연구원장은 한국 화학기업은 선진국으로부터의 고부가제품 수입과 개도국으로의 범용제품 수출이 고착됐다”며 개도국에서 범용제품 자급률을 높이면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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