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화학, 구조조정 시급…조선·해운, 일단 버텨야
올해 한국 경제의 키워드는 생존과 변화다. 특히 지난해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철강·화학·조선·해운 등 4개 기간산업은 올해부터 산업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본매체는 총 5편에 걸쳐 해당 산업들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⑤편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을, ⑥~⑨편에서는 각 산업별 구체적인 대응방향을 전문가 의견을 곁들여 진단해 볼 계획이다. [편집자주]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철강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철강 뿐만이 아니다. 화학·조선·해운 업계 등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이들 4개 업종은 과거 한국을 대표하는 기간산업이다. 기간산업이 흔들리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하루빨리 이들 산업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다.
문제는 현재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과 10월 철강·화학 경쟁력 강화방안과 조선·해운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놨다. 업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평소 경제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도 저 정도 방안은 내놓을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의 대책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살펴보면, 설비 또는 인력을 줄이는 감축안이 대부분이다. 업계가 감축에 나서면 정부가 법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즉 자발적 감축을 강조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유인책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업체들간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기간산업의 특성상, 한번 줄어든 점유율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공장 역시 한번 가동을 멈추면 다시 가동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탁상공론이 전부”라며 “공장이 무슨 스위치 껐다가 켜는 수준인 줄 알고 있다. 한번 가동 중단한 설비는 다시 가동하기까지 복잡한 과정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이 구조조정을 진행할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면, 향후 국내 기간산업의 미래는 점점 더 불투명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철강·화학, 업황 회복은 일시적…구조조정 진행해야
철강·화학은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공급과잉 업종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철강 및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정부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친환경 및 IT화를 통한 설비 경쟁력 강화 △경쟁우위 품목의 M&A투자확대를 통한 고부가화 유도 △공급과잉 품목에 대한 사업재편 지원 △고부가가치 경량소재 등 조기 개발 △수출 신시장 개척과 부적합 철강재 유통 방지 등을 제시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4개월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업계 반응이 시큰둥 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장관까지 내려보내며, 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철강 업황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구조조정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철강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의 업황 회복은 일시적일뿐,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급과잉 품목을 줄여야만 철강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극단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중국 및 일본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선 포스코와 현대제철간 통합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도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현대제철과의 합병설에 대해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며 우회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전중선 포스코 경영전략실장(전무)은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면서도 “철강업계 저성장 등 위기가 지속된다면 그런(합병)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이러한 포스코의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어, 양사 합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공식 석상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합병안을 제시했던 강정화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 연구원은 “최근 중국발 공급과잉 해소 움직임 및 철강가격 오름세 등이 있지만 세계 수요 자체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며 “언제든 위기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 정부에서 추진중인 구조조정과 대형화는 장기적으로 볼 때 맞는 방안이며, 대형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관계자는 “현재 철강 가격인상은 지난 2014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단계”라며 “결코 수요가 늘어난 게 아니다. 언제든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산업이 발달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필수다. 다시 호황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설비 감축을 반대하고 있는 업체가 많은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호황이 와도 범용 제품으론 절대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정부와 업체 모두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학업계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일시적 업황회복에 안일하게 대처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하루 빨리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화학시장은 업체 수는 많은데 개별 업체 덩치는 작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보다는 쉬운 범용제품으로 승부수를 두고 있다”며 “화학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해 범용제품 과당경쟁을 줄여야 한다. 이미 해외에선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호황은 단기적 요인으로, 알래스카의 여름과 같다”며 “삼성이 화학부문을 정리하듯 오너 결단을 촉구하는 방안으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우 화학경제연구원장은 “지금 화학업계가 호황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기업이 잘한 게 아니라 대외적 호황 변수 때문이다”며 “일본은 이미 3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호황이 끝날 시기에 구조조정에 나서면 너무 늦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할 일은 원샷법 등 특혜가 아닌 방조나 방임이다. 망할 기업은 빨리 망해 없어져야한다”며 “굳이 구조조정을 해야겠다면 특혜를 주는게 아니라 채찍을 가해야한다. 연구지원 및 대출 특혜를 없애면 회사들이 알아서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조선 업계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수주 가뭄에 시달리며, 스웨덴 조선업 구조조정의 상징인 ‘말뫼의 눈물’이 한국에서도 재현됐다. 조선소를 상징하는 골리앗 크레인이 해외업체에 헐값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난해 10월 부랴부랴 조선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까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건조설비(도크) 23%와 인력 32%를 감축하고, 2020년까지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11조원 규모로 250척 이상의 선박을 공공 발주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새로운 내용 없이 시간만 끌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에 공을 넘기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힘들다고 대부분 설비를 정리해버리면, 향후 호황기가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물량을 다른 국가에 내주게 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일본이 산업구조조정을 했을 때, 다시 호황이 찾아올 것을 예상못하고 인력 및 설비를 전부 구조조정했다. 그 빈틈을 타고 한국이 조선강국으로 떠올랐다”며 “한국 조선업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조선 생산능력을 1600만 CGT로 보는데 1000만 CGT 정도는 유치한 채로 버텨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여러 가지 규제가 발효되면서 선박 개조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며 “여러 선박들이 개조를 위해 도크에 들어오면서 신규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우수한 설비를 감축하기 보다는 설비 개조를 통해 새로운 환경기준 선박 발주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은 경기산업이라 인력 구조조정을 무분별하게 진행하면 안된다. 인력 유지는 필수”라며 “조선산업은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수주가뭄, 그리고 현재 등 3차례 위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1980년대보다는 상황이 낫다. 버티면 이긴다”며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산업을 접어선 안된다. 경영 실패라고 말하는데, 그럼 경영진을 교체하고 인력은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운업도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해운 선사들은 수년간 지속된 저운임으로 인해 재무 상황이 열악하다. 국내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15년부터 분기별로 1000억~2000억원을 넘나드는 수준의 적자를 냈다. 이에 금융당국은 국내 1, 2위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구조조정 수술대 위에 올려놨다.
결국 채무상환 압박에 시달리게 된 한진해운은 이사회를 열고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했다. 국내 1위, 세계 7위, 39년간 해운업을 지속해온 한진해운은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정부는 홀로 남은 현대상선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에선 현대상선 지원을 포함해 6조5000억원을 투입, 한국 해운업을 세계 5위 수준으로 도약시키겠단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현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형진 해양수산개발원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지금으로선 뚜렷한 방안이 솔직히 없다”며 “현대상선이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다고 해도 공급과잉만 유발할 뿐이다. 특히 한진해운이 부도나면서 잃어버린 원양항로는 수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2020년은 돼야 선박 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현대상선을 키우기 위해선 장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단기간에 적자난다고 또 구조조정 하려들면 국적선사로 키우지 못한다. 연안해양부터 차근차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창호 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해운업은 항상 하방만 겪는 업종은 아니다. 최근 50년을 보면 7년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다”며 “IMF는 2021년이면 세계 경제가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 예측했는데,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해운 정책금융을 확대해 한진해운을 이을 원양 컨테이너 선사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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