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전용 공장’서 하이브리드차 병행 생산
유럽 현지 생산도 요원···“고객 수요가 사업 주도”

기아 오토랜드 광명 1공장에서 기아 전기차 EV9이 양산되고 있다. / 사진=기아
기아 오토랜드 광명 1공장에서 기아 전기차 EV9이 양산되고 있다. / 사진=기아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BEV)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기) 속에서 내연기관차를 비롯한 신차의 생산 전략 재편에 고심하고 있다.

◇ 美서 하이브리드차 생산, ‘전기차 전용 공장’ 타이틀 떼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기아는 최근 시장 수요에 맞춰 전기차 생산 계획을 수정 중이다.

기아 노사는 최근 광명 소하리 공장(오토랜드 광명)에서 만들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의 생산량을 줄이고 카니발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EV9 생산량은 지난 1월 4162대에서 4개월 만인 5월 2652대로 매월 하락했다. 이는 EV9의 국내외 주문량이 줄어든 결과로 분석된다.

미국에서 현재 짓고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도 오는 10월 가동을 앞두고 ‘전기차 전용 공장’ 타이틀을 뗄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실시한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 양산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하이브리드 신차 출시 계획을 확정짓고, 내년 이후 전기차만 제네시스 신차로 출시하기로 한 당초 계획을 사실상 수정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오는 10월 가동 개시를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자동차 생산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조감도. /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오는 10월 가동 개시를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자동차 생산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조감도. /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당초 미국 바이든 정부가 2022년 8월 중순 시행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해 HMGMA의 구축, 조기 가동을 추진해왔다. 현대차그룹은 IRA 시행 직후 배터리 공급망, 전기차 조립 구역 등에 대한 제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현지 판매 중인 신차에 최고 7500달러의 구매시 세제혜택을 적용하지 못했다.

HMGMA를 설립해 아이오닉5 같은 전기차를 생산하면 보조금 수혜를 받을 뿐 아니라 기존 한국산 모델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전기차 수요 증가세의 둔화, 하이브리드차 수요 확대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

한편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전기차 산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큰 국민 지지를 얻고 있는 점도 현대차그룹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현대자동차 체코공장 직원들이 코나 일렉트릭을 조립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 체코법인
현대자동차 체코공장 직원들이 코나 일렉트릭을 조립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 체코법인

◇ 유럽 현지 생산 전기차 ‘코나’가 유일

중국 다음으로 큰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도 현대차, 기아의 전기차 신규 생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현대차 유럽법인은 지난 2월부터 고성능 내연기관차인 i30 N, i20 N의 체코, 터키 공장 생산을 중단했다. 유럽의 탄소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결정이다.

대신 현대차는 아이오닉5 N을 유럽 시장에 소개하고, 단종시킨 내연기관 고성능차의 후속 생산 물량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는 5개월 가량 지난 이날 현재 아이오닉5 N 생산 여부를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현대차, 기아가 유럽에 판매 중인 전기차 중 현지 생산되는 모델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1종 뿐이다.

다만 현대차는 한국산 전기차 모델의 상품성을 바탕으로 신차 출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반기에 캐스퍼 일렉트릭(현지명 인스터)을 비롯해, 아이오닉9으로 추정되는 E-GMP 기반 신차 1종을 한국에서 수출해 유럽에서 적극 판매할 계획이다. 지난 상반기 12.5%를 기록한 전기차 판매 비중을 연말까지 더욱 높인다는 포부다.

마이클 콜 현대차 유럽법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19일(현지시간)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과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올해 유럽 매출의 14%를 전기차로 채우는 것”이라며 “(신차를 투입함에 따라) 내년 2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 직원이 더 뉴 코나 일렉트릭에 배터리를 체결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 직원이 더 뉴 코나 일렉트릭에 배터리를 체결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

현대차는 이밖에 신흥 전기차 시장인 동남아에서 수립한 전기차 생산 계획을 당초 수립한대로 이어가는 중이다. 이 일환으로 지난 19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 구축한 연산 3만대 규모 첨단 공장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아이오닉6의 양산을 개시했다. 아이오닉5에 이어 현지 생산하는 두 번째 전기차 모델이다.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를 비롯해 인도, 말레이시아 등 최근 전기차 생산투자가 이뤄진 동남아 권역에서 현재로서는 기존 생산 계획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현지에서 비교적 소규모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한편 현지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전기차 양산 계획의 수정 압박이 덜한 것으로 분석된다.

권역별 상반기 전기차 판매대수. 주요 전기차 시장인 중국, 유럽, 미국의 규모가 전년동기 대비 확대됐지만 폭이 둔화했고, 한국은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국토교통부, 콕스 오토모티브, ACEA, 마크라인즈
권역별 상반기 전기차 판매대수. 주요 전기차 시장인 중국, 유럽, 미국의 규모가 전년동기 대비 확대됐지만 폭이 둔화했고, 한국은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국토교통부, 콕스 오토모티브, ACEA, 마크라인즈

◇ “전기차 세계 톱3 목표 고수할까”···업계, 사업계획 변경 여부 주목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장 리더십을 다지기 위해 글로벌 투자를 공격적으로 단행해 왔지만 현재 시장에서 이어지는 캐즘을 거스르고 전략을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상반기 주요 전기차 시장의 신차 등록 대수는 한국 6만6000대, 미국 59만9000대, 중국 301만9000대, 유럽 95만4000대로 집계됐다. 미국, 중국, 유럽의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소폭 확대됐지만 흐름이 둔화했고 한국 시장은 오히려 축소됐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전기차 판매 비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장들의 흐름에 발맞춰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오는 2030년 달성하려는 ‘글로벌 전기차 톱3 진입’ 목표를 현재로서는 고수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내달 28일 현대차가 중장기 전략을 공개하는 행사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수정된 전기차 사업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중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 본부장은 “현대차는 전기차를 개인 교통수단의 미래라고 믿지만 사업은 고객 수요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라며 “모든 고객이 전기차 전환에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와 전동화 차량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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