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경력단절로 우울감, 재취업 꿈꿔”
“면접 기회조차 없어···면접관들은 육아 얘기뿐”
“정규직 일자리는 사치···파트타임 근무가 최선”

저출산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출산 여성들의 근로 여건을 배려하고자 육아휴직, 단축 근무 등 지원 제도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다. 이는 우리 사회에 심화되고 있는 출산 기피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통계청이 조사한 ‘2023 상반기 기혼여성 고용 현황’에 따르면 국내 여성 경력단절에 따른 고용 손실은 135만명에 육박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는 연간 44조원에 달한다. 기혼여성의 17%가 경력단절 여성이고 이 중 42%가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 중인 신지은(가명, 31세) 씨는 2년 전 아들을 출산한 뒤 남 얘기라고 여겨왔던 경력단절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는 출산 전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 신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들을 위해 직장과 자아실현을 포기한 신지은(가명, 31세)씨는 3년간 경력 단절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은 신지은 씨가 아기와 놀아주고 있는 모습./ 사진=시사저널e
아들을 위해 직장과 자아실현을 포기한 신지은(가명, 31세) 씨는 3년간 경력 단절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은 신지은 씨가 아기와 놀아주고 있는 모습./ 사진=시사저널e

Q. 결혼 전 어떤 일을 했나

“결혼 전 구몬 교사로 4년간 일했다. 아이들 가정에 방문해 일대일 학습을 지도하고 관련 교재도 판매했다. 당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에서 상도 받았고, 신입 교사 교육을 맡기도 했다.”

Q. 임신 뒤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결혼을 준비하던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학습지 교사는 방문 가정별로 이동 시간이 5~10분 정도로 정해졌다. 아파트 단지들을 하루에 수십 번씩 돌고, 무거운 교재를 한꺼번에 들고 다니다 보니 임신 중기부터 몸에 무리가 왔다. 임신 후기엔 몸이 무거워지면서 중간중간 심한 복통을 느끼게 됐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해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

Q. 퇴사 후 후회는 없었나

“남편이 교대 근무하는 직종이라 독박 육아하는 날이 잦았다. 외벌이가 되면서 남편의 소득에만 기대 살아야 하니 자존감도 낮아졌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소득이 좋았던 시절이 매일같이 떠올랐다. ‘난 돈도 못 버는 여자’란 생각에 자신감,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다. 남편 소득에만 의지하기엔 생활비도 너무 빠듯했다. 저축은 꿈도 못 꾸게 되면서 돈을 아예 모을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외식과 여행은 사치가 되더라. 나를 위해서도, 내 가정을 위해서도 다시 일하고 싶었다.”

Q. 새로운 직업에 도전, 어떤 분야로 재취업을 준비했나

“웹디자인, 그래픽 디자이너로 구직을 준비했다. 남편의 교대 근무로 육아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학습지 교사는 할 수 없었다. 사실 임신 기간에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직업 훈련을 받았다. 웹디자이너 관련 자격증을 딴 이후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취업을 준비했다.”

Q. 원하는 곳에 취업했나? 면접 후기도 들려달라

“웹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 쪽으로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은 손에 꼽는다. 수십 군데 회사는 면접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경력이 단절된 지 3년 이상 지나다 보니 신입으로 입사하기에 나이도 많고, 무엇보다 어린 아기를 키운다는 것을 면접관들이 부담스러워했다.

면접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전부 육아 관련 질문이었다. 아기가 몇 살이에요?, 아기가 사랑받아야 할 시기 아니에요? 아기 두고 일은 할 수 있겠어요?, 아기가 아프면 출근 못하는 거 아니에요? 나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실무 능력이나 포트폴리오 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나에 대한 질문은 오직 육아에만 집중됐다. 면접 때마다 듣는 질문이 비슷하다 보니 점점 미혼인 타 지원자들과 날 비교하게 되더라. 면접을 볼수록 그들과 비교되면서 비참하고 초라했다.”

Q.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경제적으로 맞벌이는 필수 상황이다. 다만 받아주는 정규직 일자리가 없다 보니 파트타임 근무자로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 이력서를 냈다. 지금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파트타임 근무 중이다. 현재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

Q.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싶은지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웹디자이너 공부를 더 하고 싶다. 포트폴리오도 더 많이 쌓고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 주변 미혼 취준생들은 취업에만 시간을 쏟을 수 있지만, 나는 육아하면서 취업을 준비했기 때문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은 좌절됐지만, 웹·그래픽 디자인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자아실현의 꿈도 생겼다. 아기가 자는 동안 시간을 쪼개 공부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Q. 경력단절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을 미루고 싶다. 결혼 후로 돌아간다면 아기를 낳지 않거나 최대한 늦게 낳을 것 같다. 결혼 전에 근로소득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 사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기 계발할 시간이 있던 시절이 너무 좋았다. 아기를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육아로 인해 자아실현의 꿈을 접은 것은 아쉽지만 현실에 만족하고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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