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근거로 제기한 수출관리 강화 조치에도 규제 안 풀어
전문가들 “WTO 제소 재개 필요···지소미아 종료 카드 유효”
“아베, 코로나19 대응 미흡에 따른 여론 악화로 '혐한' 활용”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019년 12월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019년 12월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 대상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요구했던 수출관리 강화 조치를 한국 정부가 했음에도 일본은 상응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입국 제한마저 했다.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미흡에 따른 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WTO 제소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11일 오전 제8차 한-일 수출관리정책대화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 조치 없이 끝났다.

이번 대화에서 일본 정부는 실질적인 수출규제 철회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사유로 제기한 내용들을 한국 정부가 해결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7월 1일 반도체 등의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하면서 ▲양국 정책대화 미개최에 따른 신뢰 저하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무기로 전용 가능한 물자의 수출 제한)의 법적 근거 미흡 ▲한국 수출통제 인력·조직의 취약성의 문제 등을 그 근거로 주장했다.

이는 사실과 달랐다. 지난해 5월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표한 ‘위험 행상 지수(Peddling Peril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7위, 일본은 36위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체계가 일본보다 앞섰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한일 간 수출관리 과장급 회의와 국장급 정책대화를 통해 한국의 수출관리에 관한 법 규정, 조직, 인력, 제도 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정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국의 캐치올 통제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하고 수출통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대외무역법을 개정했다. 무역안보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인력도 늘렸다.

이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제8차 한-일 수출관리정책대화 전인 지난 6일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사유를 제거함으로써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일본 정부에 지난해 7월 1일 이전 수준으로 원상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요구한 조치의 해결만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철회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배상 판결을 뒤집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아베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 따른 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국제법 박사)은 <시사저널e>와 통화에서 “근본적으로 아베 정부는 2차 대전 이후 체제로부터 벗어나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려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에 대한 불법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등을 합법화하려한다”며 “이에 아베 정부는 한국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불복하면서 수출 규제를 가했다.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고 말했다.

도 위원은 “최근 아베 정부의 미숙한 코로나19 대처로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혐한(嫌韓)을 부추기고 있는 부분도 있다”며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코로나19 관련 크루즈선 대응 실패 등 서투른 대책으로 일본 내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일본 내부 일각에서는 아베 정부가 오는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강행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의도적으로 늘리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니시우라 히로시(西浦博) 일본 홋카이도대학 교수는 일본의 코로나19 감염자가 공식 통계의 약 10배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산케이신문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36.2%로 지난달보다 8.4%포인트 떨어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일 한국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하면서 전문가 회의를 생략한 이유에 대해 “최종적으로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시사저널e>에 "아베 총리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미흡으로 자국 내 비판이 커지자 혐한으로 벗어나려 한다. 한국 대상 입국 제한과 수출규제를 이어가는 것도 이러한 차원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22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대상 WTO 제소 절차의 조건부 정지를 선언했다. 이는 향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전제로 했던 조치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소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다. 정부는 WTO 제소 재개를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도 위원은 “일본의 한국 대상 수출규제 조치는 국제통상법을 위반한 것이다”며 “정부는 WTO 제소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강화에 대응해 WTO에 제소하면서 양자협의 요청서에 일본의 WTO 협정 의무 주요 위반사항 3가지를 담았다.

정부가 제기한 것은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해 일본이 한국만 특정해 포괄허가에서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의 근본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대우 의무 위반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 위반 ▲일본의 조치는 정치적 이유로 교역을 자의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이는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의무 위반 등이다.

또한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여부도 주목받는다. 지난해 11월 22일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연기했다. 이 역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전제로 했던 조치였다.

조 위원은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일본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압박 때문에 지소미아를 종료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의 대선 국면에서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지소미아 카드는 오는 5월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가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시점에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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