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들-동성애, 보통의 이야기]① 변방에 레즈비언이 산다!
  • 박지호 기자(knhy@sisajournal-e.com)
  • 변소인 기자 (byline@sisajournal-e.com)
  • 차여경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8.12.26 16:1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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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동성연인 심층 취재…“저희도 온전한 커플 맞는데요?”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극적이고 왜곡된 정보가 주를 이룬다. 편견의 만연, 제도의 부재 등을 해결하기 위해 성소수자 단체들은 인권 운동에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코노미 [소수자들] 기획팀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9회에 걸쳐 풀어낸다. 이성애적 사회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 갈등도 섬세하게 짚어내고자 한다. 사랑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의 ‘보통 연애’ 이야기를 기획기사에 담았다. [편집자 주]


그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을 그 시작으로 정했다. 이에 따라 여타에 앞서 사랑의 모습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본 기사의 인터뷰 대상이 된 레즈비언 커플이 성소수자 연애의 대표나 모범형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의 여러 모습 중 한 사례를 들려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첫 편은 주장보다는 기록에 가깝겠다.​


12월 레즈비언 커플을 만났다. 둘은 서한나(이하 서)와 최예빈(이하 최)이다. 그들은 본명 그대로 기사화되기를 바랐다. 국내에서는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서로를 묶어둘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적힌 기록물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 영원히 속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씨는 여성주의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고, 최씨는 내년 1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다.


◇ 한다, 연애를, 여자 둘이, 변방에서


자신들을 변방의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한 둘은 대전에 살고있다. 생각보단 덜 변방이다. 4살 차이다. ​집이 가까운 둘은 매일 만난다. 서로의 집에 가끔 놀러가지만 공동의 집이 없어서 대체로 술집을 전전한다. 최씨에게 서씨는 첫 번째 동성연인이다. 서씨와 최씨는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매일 쓰다 보니 그것은 일기가 되었다. 어느 날은 다섯장까지도 길어진다. 한 자 한 자 그렇게 나아간 글씨는 한 권의 노트를 빼곡히 잡아먹었다. 둘은 이를 엮어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엮고 묶는 것을 참 좋아하는 커플이었다.

서씨와 최씨가 그간 적었던 교환일기 내용. /사진=변방의 커플 제공


서로 책을 빌려주다가 언니가 먼저 교환일기를 쓰자고 했다. 말로 되어지지 않는 것들, 글로만 전해지는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우리는 기댈 수 있는 게 마음뿐이다. 제도가 있어서 국가 공인을 받고, 이혼처럼 헤어지려면 복잡한 절차가 있어야 하고 그런 게 아니니까.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에만 기대야 하니까 자꾸 (우리가 사귄다는 걸) 소문내려고 하고, 이렇게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같이 있어도,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교환일기에 담긴다. 출판하고 싶다. 출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서로를 옭아매기 위해서다(조금 웃음).


그들 일기의 한 구절을 적자면 최씨는 서씨에게 이렇게 썼다.“그러니까 나는 물고기가 아니고 당신은 바다가 되지 않아도 좋아요. 내가 바라는 것은 둘 다 해초가 되어서 같은 시공간에서 뒤엉키는 것. 그렇게 말라가는 것(김처럼) 뿐이야.” 서씨는 최씨에게 “내가 모르는 당신의 여름이 무지무지 궁금해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다 너무 좋은 것들일까 봐 두려워요”라고 했다.



​과거 남자친구를 사귈 때에는 서로 접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시간제 친구처럼. 만나고 있으면 어서 헤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를 만나면서는 아니다. 한 번도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믿지 않았다. 언니는 나를 진짜로 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최초의 인간이다​.


​ 부모님께 밝혔다


둘의 순천 여행 중 최씨는 어머니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너희 레즈비언 아니지?”라고 묻고 있었다. 질문의 형식이었으나 그것은 호소였다. 그녀는 곧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전했다. ​결코 아니라는 답을 주지 않는 딸에게 어머니는 보통의 어머니가 되어 남자를 권했다.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의 참여를 권했다. 최씨는 이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커밍아웃 이후에도 예빈씨와 어머니는 함께 겨울 외투를 사고 영화를 본다. 집 안에서는 ‘아슬아슬한 공존’ 중이다. 아래는 최씨와 그녀 어머니의 실제 대화창.  

 

/사진=최예빈씨 제공.



아빠한테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아빠랑 동성애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을 함께 본 적이 있다. 그때 아빠가 나더러 내가 만약 동성애자라면 자살하겠고 말했다. 그때 이거 무슨 일인가 싶고……. 하지만 아빠가 상처를 받을까봐 말을 못하는 건 아니다. 나중에 나를 방해할까봐 밝히지 않는 거다.

​ “저들은 어떻게 자랐기에 동성애자가 되었을까”라는 시선



“내가 동성애자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어떤 부분의 결핍이 있어서 동성애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성애자들도 충분히 갖고 있는 삶의 드라마를 동성애 쪽으로 덧씌워서 보려고 하는 것들이 불편하다.


레즈비언 커플을 그 커플 그대로 봐주지 않는 게 있다. 내가 분명히 여자친구가 있음을 밝혔음에도 우리 관계를 우정으로 본다거나, 애인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행동들을 한다. 온전한 커플로 보지 않는다는 거지.

​​ 이성애 사회에서 동성애자임을 깨닫는 순간


일본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1949년 자전적 소설인 ‘가면의 고백’을 내놨다. 주인공 ‘나’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 속 남자를 보고 첫 성적 끌림을 느끼며 정체성 혼란을 느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성애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여자를 사랑하려는 성취되지 못할 노력을 이어간다. 그는 그가 사랑한다고 믿는(스스로 속는) 여자 소노코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어설픈 도둑질을 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은 나의 양심을 찔렀다. 내가 참으로 원하는 것은 좀 더 결정적인 불행인지도 몰랐다”고 생각한다.

이성애를 기본 값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자라난 세계의 주류 논리를 등지고 사랑만을 위한 지역으로 진입하는 일의 고됨은 감행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중학생 때 동성 친구들이 이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데 나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남자애가 좋다고 말 하는 여자애한테 더 관심이 갈 때, 내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록 튀어나와 있다는 느낌. 그러던 중 특정한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중학교 1~2학년 때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수업이 기대되고, 복도쪽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이 지나가는 걸 봤다. 내가 저 선생님을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듯이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남자친구도 사귀어봤다. 남자애랑 사귄 이유는 같이 노는 친구들이 남자애들이랑 사귀었으니까. 또래 문화에 젖어서 게 중에 친해진 남자애와 사귀었다.


나도 남자친구를 몇 번 사귀었다. 다만 남자랑 사귈 때에도 동성 친구에게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남자친구랑 사귀면서도 여자친구랑 노는 게 더 좋았다. 여자에게 그런 성애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는 생각은 안했다. 오히려 이성만이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양성애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못 깨달았을 뿐이지.


당시 네이버 검색창에 ‘여자가 여자를 좋아’까지 치면 여러 완성형 검색어가 떴다. 비슷한 질문이 많더라. “학창시절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멋진 남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는 대답을 봤다. 와 닿지 않았다. 세상과 내가 일치되지 않는다는 느낌. 뭔가를 숨겨야 하고, 숨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으니까.

​ 교정 대상으로서의 동성애? ​​



레즈비언에게는 교정강간이라는 위험이 있다. 레즈비언은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남자들이 “남자 맛을 못 봐서 그래”라는 식으로 여긴다.

교정강간(corrective rape)이란 상대방의 성(性)적 지향을 교정해준다는 명목으로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접촉 및 성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남자 경험이 없어서 여자를 사랑하는 너에게 남자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식의 무지하고도 무도한 범죄 행위다. 얼마 전 불거졌던 부하 여군에 대한 해군 간부의 성폭행도 “남자 맛을 알려주겠다”며 자행된 교정강간이었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위협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해군 간부 강간 사건만 봐도 그렇다. 아직 내게 위험이 오지 않은 것뿐이지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참담하다. ​

​ 이성애로의 ‘복귀’가 가능한 동성애? 



​블로그에 언니와의 연애 사실을 올렸을 때 어떤 남자가 댓글을 달았다. “키스함?”이라고. 사람들은 이런 걸 가장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여기에 “아직 안 함”이라고 대답하면 안심한 달까. 동성 간 섹스를 하지 않으면 이성애로 복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성애에서 남친이랑 아직 안 잤다고 하면 그에 대해 “그럼 넌 동성애로 넘어갈 수 있겠다”고 안 하지 않나. 옛날에도 게이 문제는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다뤄졌는데 여성들의 동성애는 좀 봐주는 느낌이 있다. 애들 장난, 미성숙한 사람끼리 미성숙한 감정을 나누는 차원의 것으로.


키스, 섹스 안했다고 하면 아직 남자와의 관계를 아예 단절하지 않았다고 보면서 안심하는 듯하다. 여자를 왜 항상 남자와 연관해서 생각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최씨의 동생이 그린 커플의 그림. /사진=서한나씨 제공

◇​​ 우리, 제도권에 들어야 한다​서
사랑은 생활이다. 이 사랑이 유독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제도적이로든 문화적으로든 어딘가 막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사랑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거고, 좀 더 함께 살기 쉬우려면 신혼부부 대출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정책적으로 우리를 가구로서 인정해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성소수자 연인들에게 동성혼이란 타국의 소문에 불과하다. 혼인평권(婚姻平權)은 결혼에 있어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뜻으로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운동에서 쓰였다. 대만의 헌법재판소 격인 사법원은 지난해 5월 남녀 간 결혼만을 인정한 현행 민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내년 5월까지 대만의 입법원은 동성혼을 위해 민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로써 대만은 아시아 내 최초의 동성혼 합법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3년 동성부부인 김조광수 부부의 혼인신고가 불수리 처리되었다. 민법에는 중혼과 근친혼만을 금지할 뿐 동성혼을 금지하는 명백한 규정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 혼인법제 상 남녀 간의 결혼만을 ‘진정한’ 결혼으로 여기고 있어서라는 게 반려의 이유다. 관습법 차원으로 읽힌다.

다시 서
이 사랑을 임시적인 상태라고 보는 시각이 가장 싫다. 임시적인 감정, 일시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책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를 새로운 가구의 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최​
​우리한테 세금을 덜 받을 것도 아니면서.

레즈비언, 어떻게 비쳤으면 싶은지


유튜브에서 다뤄지는 퀴어 영상을 보면 누구 한 명이 여자 역할, 남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레즈비언 안에서도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을 펨,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을 부치라고 하는데 이런 게 좀 깨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남성적-여성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도 모든 연애의 기준을 이성애로만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성애가 각본이 더 치밀하다. 남자는 이렇게 해야 하고 여자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런 연애 각본 자체를 파기해야 한다. 레즈비언 커플을 이성애 커플의 아류로 봐선 안 된다.

 한국의 퀴어가 한국에서 꾸는 꿈


둘은 퀴어프렌들리한 외국에 가서 결혼해 살고싶다. 다만 여건이 만만찮다. 이민 이후의 삶을 지탱해줄 직업을 찾는 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한국에서의 미래를 꿈꾼다. 한국에서 살아가야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변방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옆 동네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106동 한 채는 아직 1억이 좀 안 된다. 같이 살 집이 있다면 술집을 더 이상 안 가도 되니까. 일단 우리가 30대가 되면 집을 제일 먼저 알아 볼 것이다. 일자리도 대전에서 구할 것 같다. 그냥 오래도록 같이 살고 싶다.

박지호 기자
산업부
박지호 기자
knhy@sisajourn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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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hope 2019-01-17 10:18:26
훌륭한 기사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밑에는무시해요 2019-01-13 22:10:26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걍 한심 2019-01-12 20:41:59
걍 한심스럽게 느껴지네요. 힘들게 기자 해서 이런 기사 쓰는 걸 보면 부모님이 좋아 하던가요? 진짜 궁금.
기자 양반. 개인 인권을 존중 하는건 좋은데...
사회에 문제가 된다면 그건 아닌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