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26개국서 동성혼 법제화 된 상황에서 한국은 이들을 위한 법·정책 미비
류민희 변호사 "동성커플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기본 권리가 부정될 순 없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결혼. 누군가에게는 어렴풋한 상상이기도, 버거운 과제이기도,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바라 마지않는 소망이기도 한 그 것.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과는 별개로, 그럼에도 여전히 성혼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동성 커플로 알려진 김조광수·김승환씨는 2013년 청계천에서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했으나 불수리 처리 되었다. 결혼을 발표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부 아닌 커플로 불린다. 

모든 동성 커플이 결혼을 바란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결혼을 꿈꾸는 동성커플이 바라는 것은 제도적 인정을 통해 실현되는 법적·재정적 혜택, 관계의 공고화다. 진입한 제도권 속에서 가족이 되어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을 받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 가점을 노려 희박한 당첨에의 희망을 품어보는 것. 서로의 보호자가 되며, 공동의 재산을 쌓는 것, 혹시 헤어질 경우 이를 나누는 것, 부모 될 자격을 얻는 것 등 국가가 부부에게 부여하는 일체의 법적 권리를 바란다. 이는 결혼의 실용에 관한 이야기다. 또 평등권 보장과 같은 대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세계, 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서 슬로베니아, 터키와 더불어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어떠한 동성커플에 대한 인정 제도가 없는 세 국가 중 하나다. 성소수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정책적·입법적 변화는 사실상 전무한 것이다.  

사실 하늘의 별을 따다 땅에 심어달라는 주문이 아닌 동성혼 법제화는 여러 국가에서 이미 이뤄진 지 오래다.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가 동성혼을 법제화했고, 이후 벨기에·스페인·캐나다·남아프리카공화국·스웨덴·노르웨이·아이슬란드·포르투갈·아르헨티나·덴마크·프랑스·잉글랜드·브라질·우루과이·뉴질랜드·스코틀랜드·미국·멕시코·룩셈부르크·아일랜드 등 현재 이미 26개국과 45개 법적 관할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됐다. 아시아는 어떤가. 대만의 사법원은 2017년 동성혼을 합법으로 인정했고, 태국도 현재 동성혼 허용을 추진중이다. 일본만 해도 2015년 도쿄 시부야, 세타카야 구를 시작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 등록제도를 시작했다.

2018 타이페이 프라이드에서 2018년 대만 사법원 결정을 축하하는 한국 성소수자 활동가들. /사진=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2018 타이페이 프라이드에서 2018년 대만 사법원 결정을 축하하는 한국 성소수자 활동가들. /사진=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 한국에서 관련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김조광수·김승환씨는 혼인신고가 거부된 이후, 이듬해인 2014년 서울서부지법에 불복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16년 5월 1심이 각하 처분을 받았고, 같은해 12월 항고가 기각됐다. 법원이 이같은 판결을 내린 데 대해 해당 소송을 맡았던 류민희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에서는 동성커플에 대한 사회보장적 권리의 차별 배제 상황은 이해하나, 이 상황의 해결은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의 몫이라고 공을 돌렸다"면서 "그 이후 입법부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입법 (생활동반자법 포함) 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항고 기각 이후에도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노력은 있었다. 2017년 7월 11일 녹색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정의당, 참여연대 등 국내 주요 시민사회 단체, 정당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직장 내 ‘성소수자 가족’ 친화적 정책 만들기 협약식을 하여 사적 영역인 직장에서부터 성소수자 가족이 처한 어려움과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하기 했다. 

다만 이로는 부족하다. 혼인상황과 결부되는 권리, 혜택 및 의무는 한국법에서 1000개 이상이다. 이성부부는 1000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동성커플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가가 인정한 '가족'이 아니라서다. 

류 변호사는 이에 대해 "분명한 인권 침해 상황이다"면서 "배우자가 아플 때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간호를 위해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배우자와의 이별이 삶의 근간을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것,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를 주관하고 애도의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불필요한 슬픔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이 유예되거나 부정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 출간된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리 배지트 지음, 민음사)에는 이런 인터뷰가 실려있다. 인터뷰이 '얀'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에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했다. 

게이인 얀은 거주하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다른 남성과 결혼한 축에 들었는데, 선택권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비록 결혼하지 않는다 해도 결혼을 선택할 권리는 있어요. 그건 우리 관계가 이성애자들의 관계와 동등하다는 느낌을 줘요. 우리 관계도 똑같이 중요해요.”

류 변호사는 성 소수자가 직면하고 있는 난관 해결의 시발점은 제도화라고 역설했다. 류 변호사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이 차별과 배제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 건강 문제는 심각하다. 이러한 ‘소수자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면서 "직장, 학교 등 작은 커뮤니티부터 정책, 규범, 문화 등을 성소수자 포용적으로 만들면서 손에 잡히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