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대출 지양, 자체 유동성 확보로 사업 안정성 높여…1조원 베팅 '유엔사 부지' 개발로 이목 집중

유엔사부지와 엄석오 일레븐건설 회장 / 이미지= 조현경 디자이너

‘평생 직업’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10년 주기로 직업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는 기존 직업에서 다진 인맥 등 사회적 자본, 설비 등을 포기하면서까지 직업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평생 직업 정도가 아니라 ‘평생 직장’이 유행이던 1980년대에 직업을 바꾸는 결단을 내려 끝내 성공을 이뤄낸 이가 있다. 엄석오 일레븐건설 회장 이야기다.

엄 회장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는 1949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한 이후 20대 성년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와 전집류를파는 책 세일즈맨 일을 시작했다. 이때 번 돈으로 그는 1980년대 대형 출판사인 ‘양우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출판업이 시들해지면서 그는 지난 1991년 동진주택을 설립해 건설업계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폭발적 경제성장, 인구증가를 통해 부동산 사업이 호황을 누린 시기다. 같은해 회사 이름을 일레븐건설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건설사업을 진행했다. 

그의 이런 선택은 상당히 과감했다. 흔히 시행사라 불리는 디벨로퍼는 토지이용 계획부터 자금조달 등 토지개발 사업 전 과정을 아우르는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만큼 토지이용을 위한 인‧허가 절차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같은 위험을 뚫고 엄 회장은 디벨로퍼 1세대로 건설업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이후 엄 회장은 아파트 분양사업을 통해 회사를 중견급으로 키운다. 그는 지난 1999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일대 2253가구 아파트 개발을 시작으로 2000년대 수지지구 아파트 4000여가구, 수지구 성북동 3600여가구 사업을 수행했다. 1997년말 외환위기로 경제가 초유의 위기에 처한 와중에도 그는 착실하게 회사를 키웠다.

그의 이같은 성공에는 특유의 ‘보수적 경영관’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시행사는 분양사업 진행 시 시공사와 함께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부족한 자금을 시공사와 공동보증으로 융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목적이다. 사업진행 자금의 90%를 외부에서 차입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시 위험분담이 주된 이유다. 외부 차입금이 막대한 만큼 사업이 조금만 지체되도 시행사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엄 회장은 PF대출을 지양하고 자체 유동성 확보 후 사업을 진행해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이같은 엄 회장의 경영관은 회사 재무제표상 수치로도 확인된다. 일레븐건설은 지난 2012년 영업이익이 58억원으로 전년(753억)보다 큰 폭으로 줄어드는 위기를 맞았다. 이 기간 매출액은 절반 이상 축소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영향이다. 이듬해에는 영업손실 884억원, 순손실 1408억원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후 분양사업이 성공하면서 회사는 2014년 영업이익 874억원, 순이익 675억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한다. 내실을 앞세우는 엄 회장의 경영관이 회사의 위기탈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PF대출의 경우 사업성이란 무형의 가치를 평가해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기법이다. 무형의 가치를 담보로 잡은 만큼 대출이자도 매우 높다. 엄 회장의 경우 PF대출을 지양해 이자비용 등을 최대한 줄이며 회사 내실을 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은채 착실히 성장하던 일레븐건설은 유엔사부지 매입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소재 유엔사부지 입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입찰금액으로 최고가인 1조552억원을 써낸 결과다. 입찰예정가가 8031억원에 달해 타 건설사와 시행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것과 달리 일레븐건설은 단독으로 부지낙찰에 성공했다. 건설업계에도 이변이 일어났다고 평가한다. 특유의 보수적 운영관으로 엄 회장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착실히 모은 결과다. 

일레븐건설은 5만1762㎡ 규모에 이르는 유엔사부지에 최고급 주거타운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금 조달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3년 간 6개월 간격으로 1583억원씩 일레븐건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납부해야 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4년 연속 증가해 지난해 779억원에 이르지만 사업자금을 충당하기엔 부족하다. 엄 회장이 그동안 '알뜰 경영'으로 확보한 자금과 분양사업 대금 등으로 충당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사업진행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하면 외부 차입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PF대출 등을 지양하면서 자체자금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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