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서 출발, 매출 2조 넘보는 종합개발그룹 키워…여의도 MBC부지 개발 맡아 눈길

 

정춘보 신영 회장과 청주 지웰시티 / 사진=해안건축

도시 디자이너인 디벨로퍼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규모 택지개발보다는 소규모 지역별 도심재생에 초점을 맞춤에 따라, 기존 도시와 균형을 맞추는 개발사업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벨로퍼들은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캠퍼스라는 생각을 갖고 도시에 생각과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펼친다.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에 디벨로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확한 수요 예측이 결합하며 땅의 효율을 극대화한 사례를 소개한다. 또 디벨로퍼로서 척박했던 시장 상황을 극복하고 주역이 된 이들의 성장과정을 통해 디벨로퍼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경부고속도로 청주IC를 빠져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천루 건물이 위용을 드러낸다. 한눈에 봐도 높고 넓은 아파트가 늘어선 이곳은 고가의 주거단지답다. 동시에 현대백화점, 롯데마트, CGV, 비즈니스호텔 등이 들어선 청주 최대규모의 유통상권이기도 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공장 굴뚝에서 매일 희뿌연 연기가 피어나고 젊은나이로 생업 전선에 뛰어든 산업전사들로 넘쳐나던 방직공장 지대였다.

섬유산업 침체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즈음 정춘보(63) 신영 회장은 이 입지에 주목했다. 청주IC에서 가까운 도시의 간판 격인 자리이면서 낙후돼있던 청주 서부지역의 균형발전 촉진을 이뤄 성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는 이곳에 3조원 이상의 사업비를 들여 복합용도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업 도중 차질이 생겨 고전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개발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거주자들에게 강남의 타워팰리스 못잖은 삶의 만족도를 주는 일류 주거지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지닌 정춘보 회장은 디벨로퍼의 기본자질로 창의력을 꼽는다. 버려진 땅이라도 해당 부지가 가진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개발방안을 마련해 최대수익과 고객만족을 이끌어내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자 성공 비결로 삼는다. 실제 그의 또다른 성공 사업장인 분당 구미동 역시 옆에는 고속도로가 있어 시끄럽고 위로는 고압선이 지나가 아무도 눈길주지 않던 땅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벽돌 외관으로 꾸며진 유럽풍 오피스텔 ‘시그마Ⅱ’분양을 했고 순식간에 완판을 이뤄냈다.

흔히 시행사라 불리는 부동산개발회사는 특별한 자격증 없이도 차릴 수 있다. 때문에 한방 터뜨리면 대박이 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장에 진입한 일부 창업자들이 건설 및 개발사업 경험 없이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디벨로퍼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이유도 이러한데서 연유한다. 그러다 패가망신해 업계에서 탈락해 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성공하면 사업가지만, 실패해서 하루 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만큼 시장 진입은 쉽지만 버티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정 회장 역시 개발과 관련한 자격증을 보유한 건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는 부동산 개발관련 잔뼈가 굵은 정통파이자 1세대 디벨로퍼다. 동아대 토목과 졸업 후 25살 나이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당시엔 부산시청 공무원이었지만 항측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 시내의 개발현황을 파악하는 업무를 맡았다. 간혹 도시개발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 도쿄도 들락거렸다. 그러다 부동산개발업에 눈을 뜨게 되면서 사업에 본격 진출하게 됐다.

정 회장도 처음부터 창의성과 개척정신을 갖고 뛰어들진 않았다. 1984년 신영기업을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의 부촌이던 서울 강남구 도곡동 부촌에 채 10여채가 되지 않는 빌라를 지어 분양했다. 비교적 안정적 사업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당시의 실패를 통해 남들을 뒤따라가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고부턴 자신만의 길을 만들기 시작하며 창의력, 역발상 등에 초점을 맞췄다.

한번 실패를 맛보고는 목돈 마련을 위해 빌딩관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1988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강남 테헤란로를 따라 업무용 빌딩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일본에 머무르며 선진국의 빌딩 관리기법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 있는 거의 모든 빌딩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빌딩 소유주들은 새로운 빌딩 관리기법을 갖고 있는 신영에 관리를 맡기기 시작했다.

빌딩관리 대행으로 목돈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약 30여 년의 기간 동안 ‘지웰’이라는 독자 브랜드로 시행사업에서 입지를 다졌다. 또 사업 다각화로 ㈜신영, ㈜신영에셋, ㈜대농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신영그룹을 일궜다. 신영그룹은 이제 국내 최초, 최고의 부동산 디벨로퍼 전문기업으로 꼽힌다. 그룹의 전체 매출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직전해인 2015년(9556억원)에 견주어보면 55% 급증한 수치다.

급등한 성장세만큼이나 앞으로의 행보에도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MBC가 매물로 내놓은 여의도 MBC 부지개발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만7795㎡ 규모 땅에 업무·상업·주거시설을 갖춘 건물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로 사업비만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MBC 부지 개발은 도심 재개발 사업의 새 방향을 제시한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정춘보 신영그룹 회장은 “도심 공동화가 심한 여의도에 짓는 대규모 주상복합 시설이다. 24시간, 365일 활기찬 도시재생 모범 사례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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