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규제 발효로 발주나 개조 늘어날 것…호황기 대비한 인력 유지 ‘핵심’

루마니아 조선소에 헐값에 매각된 성동산업 마산조선소 골리앗 크레인. / 사진=뉴스1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성동산업 마산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의 해체 작업이 조만간 마무리된다. 높이가 105m에 달하는 해당 크레인은 자체 무게만도 3200톤이나 된다. 해체가 끝난 골리앗 크레인은 바지선에 실려 루마니아에 있는 조선소로 보내질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이 크레인을 사겠다는 조선소가 없어 지난해 11월 헐값에 해외로 팔렸다.

이번 골리앗 크레인 해체는 조선산업 쇠퇴로 2002년 골리앗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아 넘긴 스웨덴 ‘말뫼의 눈물’을 연상케 한다. 말뫼는 한때 세계적인 조선소인 코쿰스가 있던 스웨덴 도시다. 크레인이 해체되던 날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스웨덴 방송은 장승곡과 함께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언론에서는 말뫼의 눈물을 본따 ‘마산의 눈물’이라 말하고 있다. 이는 국내 조선업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최악의 수주 가뭄 맞이한 조선업계

지난해 조선 업계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사상 최악의 수주가뭄이 덮쳐왔기 때문이다. 연이은 수주 가뭄은 부분적 도크 폐쇄, 설비 및 자산 매각,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불러왔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지난해 1~11월 누적 수주 총액은 53억3000만달러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 수주액인 279억2900만달러의 19.1%에 불과한 최악의 수주실적이다.

조선업계가 2014~2015년의 대규모 손실 계상에 이어 지난해 수주 절벽에 직면하자 정부가 칼을 대기 시작했다. 정부는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이름 아래 국책 금융기관 등을 이용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조선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2018년까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건조설비(도크) 23%와 인력 32%를 감축하고, 2020년까지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11조원 규모로 250척 이상의 선박을 공공 발주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채권은행들은 각 업체마다 자구계획안을 요구하며 몸집 줄이기를 주문했다. 지난해 조선 빅3에서 떠난 정규직만 7000여명에 달한다. 비정규직은 2만~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부의 강화방안에 대해 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새로운 내용 없이 시간만 끌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에 공을 넘기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힘들다고 대부분 설비를 정리해버리면, 향후 호황기가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물량을 다른 국가에 내주게 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일단 버텨야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과거 일본이 산업구조조정을 했을 때, 다시 호황이 찾아올 것을 예상 못하고 인력 및 설비를 전부 구조조정했다. 그 빈틈을 타고 한국이 조선강국으로 떠올랐다”며 “한국 조선업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조선 생산능력을 1600만 CGT로 보는데 1000만 CGT 정도는 유치한 채로 버텨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여러 가지 규제가 발효되면서 선박 개조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며 “여러 선박들이 개조를 위해 도크에 들어오면서 신규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우수한 설비를 감축하기 보다는 설비 개조를 통해 새로운 환경기준 선박 발주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안한 선박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를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최종 승인했다. 황산화물 규제는 연료유 중 유황분의 상한을 현행 3.5%에서 0.5%까지 줄이는 것이다. 이 규제로 인해 2020년부터 전세계 모든 바다에 다니는 선박의 연료는 기존 벙커 C유에서 MGO(Marine Gas Oil), 혹은 LNG로 바꿔야 한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MGO는 기존에 쓰던 벙커유에 비해 70~80%정도 비싸다. 선주들로선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를 넘나들던 시절의 선박 연료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반면 LNG는 MGO에 비해 평균 30% 정도 가격이 싸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20% 더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비싼 MGO를 선박 연료로 사서 쓰는 것보다, LNG 연료를 쓸 수 있는 선박을 다시 발주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9월부터 발효되는 선박평형수처리장치(BWTS) 도입과 2018년부터 시작되는 실연비데이터보고(MRV)도 발주를 부채질할 수 있다. 선박평형수처리장치 도입은 다른 나라 항만에서 처리되지 않은 평형수 배출을 금지하려 선박 내 평형수 처리 설비 의무화하는 것으로, 노후 선박 교체 시기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BWTS를 설치하고 검사받는데 600만 달러 정도가 드는데, 2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은 차라리 새 선박을 발주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MRV는 각국에 입항하거나 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제도다. 유럽에서는 이미 시작됐고, 내년부터 전세계 모든 선박에 적용된다. 데이터 축적을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제 또는 탄소세를 매기기 위한 사전 조치다. 이 역시 친환경 선박 발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은 경기산업이라 인력 구조조정을 무분별하게 진행하면 안된다”며 “과거에도 조선산업은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수주가뭄 등 위기가 있었고 이번이 3번째”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당시 회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일본이 조선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50대 이상만 받았는데 실상 30·40·50대가 골고루 퇴직했다”며 “이후에 일본 조선은 한국에 따라잡혔다. 인력유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1980년대보다는 상황이 낫다. 버티면 이긴다”며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산업을 접어선 안된다. 경영 실패라고 말하는데, 그럼 경영진을 교체하고 인력은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 선임연구원은 “조선산업은 포기하면 안되는 기간산업”이라며 “ 어떻게든 수주 가뭄을 버텨나가야 한다. 수주가뭄기 회복될 때까지 무급순환휴직등으로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선임연구원은 “최근 일본이 한국 수주량을 다시 따라잡은 건 결국 조선산업이 버텨야 한다는 반증”이라며 “정부와 산업은행 등이 실력 없는 경영자를 앉히고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지 못한 점도 있다. 지금 버터야 향후 호경기 때 조선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강화 방안에 대해 비판도 나왔다. 박종식 연세대 사화발전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선박(군함 및 여객선) 발주는 중형급 이상 조선소엔 해당되지 않아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특수목적 상선 연구개발 등에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노사 모두 조선업을 버리려곤 하지 않는다”며 “노사합의를 기반으로 성장전략을 고민하며, 고용유지를 통해 기술력을 유지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엔 무급순환휴직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도 노사협의를 중재하고 발전방안이 나올 수 있게 지원을 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위기 극복을 위한 체력 마련(고용유지 및 설비유지), 장기적으로는 신산업 연구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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