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 입찰 제재 피한 현대重
KDDX 수주길 열렸지만 한화오션 고발
올 11월 화해 무드 조성···해외 잠수함 시장서 협력 예상
KDDX 사업 수주전, 여전히 치열한 경쟁 벌일듯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 사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 사진=HD현대중공업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특수선 시장에서 수십년간 경쟁 구도를 유지해온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입찰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불거진 소송전으로 올 한 해를 보냈다. 최근 양사는 서로를 향한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하면서 글로벌 함정 시장에서 ‘원팀’으로 나설 발판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8일 호주 정부의 10조원짜리 군함 입찰에서 양사 모두 최종 후보에도 못 오르면서 양사 모두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인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표면적으로 양사는 ‘화해모드’에 돌입했지만 내년 초로 연기된 KDDX 수주전을 두고는 물밑 경쟁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재 산업부는 KDDX 방산업체 지정을 위한 실사단과 현장실사 등을 진행 중인데, 복수로 방산업체를 선정한다면 치열한 경쟁 입찰이 예상된다. 국내 구축함 사업자는 양사뿐이어서 한쪽을 꺾으면 다른 한쪽이 사업을 가져가는 구조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한쪽 꺾이면 8조원 사업 '꿀꺽'···‘난타전‘으로 번진 수주전

KDDX 사업을 둘러싼 양사의 고소·고발전은 지난해 11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사기밀보호법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불거졌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약 3년간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KDDX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했다. 법원은 이들 직원에게 각각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방위사업청이 군사기밀 유출로 물의를 빚었던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지 않기로 하면서 양사 갈등이 격화했다. “대표이사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방사청의 논리다. 군사기밀을 불법 취득하고 이를 공유한 이들은 HD 현대중공업 측 ‘대표 및 임원’이 아닌 직원들이라는 해석이다.

HD현대중공업이 ‘부정당 업체’로 지정됐다면 사실상 최대 5년간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게될 예정이었지만, 방사청의 판단으로 KDDX 사업의 유력 사업자로 떠오르게 된 것. KDDX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현재 해군이 쓸 이지스 구축함급 군함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내 업체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곳뿐이다.

한화오션은 즉각 반발했다. 방사청의 판단이 내려진 지 일주일만인 지난 3월 5일, 한화오션은 기자회견을 열어 방사청의 심의 결과를 정면 반박했다. 같은 날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임원 개입 여부를 추가 수사해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지난 3월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 해외 방산 시장선 참패···‘원팀 협력‘ 필요성에 ‘화해 모드‘

‘호주 군함 사업 참패’가 이렇게 시작한 법정 공방을 마무리 짓게 된 계기가 됐다. 지난 11월 양사는 호주 정부가 발주한 10조 원 규모 수상함 수주에서 고배를 마셨다. 경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원팀’을 이룬 것과 달리 갈등 관계인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이 독자적으로 프로젝트에 뛰어들며 화력이 분산된 게 패인으로 지적됐다.

탈락의 충격이 컸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글로벌 수주전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법적 분쟁이 격화되는 점도 탈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이 서로를 겨냥해 냈던 고소장도 거둬들였다. 

지난달 22일 한화오션이 먼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여부를 가려 달라며 냈던 경찰 고발을 취소했다. 이에 화답하듯 HD현대중공업도 사흘 뒤인 25일 한화오션에 대한 고소 취하서를 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간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양사는 해외 잠수함 사업 수주전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첫 협력은 캐나다가 추진 중인 ‘캐나다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CPSP는 3000t급 잠수함 8∼12척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규모는 약 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3조원 규모의 폴란드 오르카(ORKA) 프로젝트도 공동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국내 시장은 양보 못 한다”

하지만 국내 구축함 시장의 유일한 경쟁자인 만큼 “KDDX 사업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게 양사 입장이다. 현재 산업부는 KDDX 방산업체 지정을 위한 실사단과 현장실사 등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이달 초 KDDX 함정 사업자 선정 관련 의혹을 받았던 왕정홍 전 방사청장과 HD현대중공업 사이의 관련성도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경찰 수사가 종결되면서 양사 고소·고발로 반년가량 지연된 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선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두고 양사의 신경전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관례대로라면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진행하는 수의계약 방식이 채택돼야 하지만, “군기법을 위반한 HD현대중공업을 밀어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어 경쟁입찰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이 기밀 유출로 논란이 된 만큼 경쟁입찰로 건조업체를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올해 시작되는 ‘상세설계·선도함 건조’에 대한 수주전은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통상 군함 건조사업은 기본설계를 이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을 이어받아 진행해왔다.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감점은 여전히 HD현대중공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 감점은 1.8점으로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 적용된다.

최근 한화오션이 KDDX 개념설계 보고서를 기본설계에 무단 인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방산업체 지정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의혹과 관련해 “한화오션이 KDDX 개념설계 내용을 사전 승인 없이 활용했다는 의혹은 이미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난 사안임이 명확하다”며 “2012년 당시 군사기밀보호법 지침과 훈령에 원본 보관이 위반이라는 근거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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