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사 충실의무 확대’ 도입시 후폭풍 우려
상법개정 방향타 될 예정이던 정책토론회, 계엄에 취소···급박한 탄핵 정국 속 일정 언제 다시 진행될지 미지수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한때 ‘노란봉투법’에 잠 못이루던 재계가 올해는 ‘상법개정안’ 도입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전전긍긍했다. 기업들이 기업 가치 훼손 등 심각한 후폭풍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가운데 사실상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현재는 탄핵 정국 속에서 상법개정에 대한 논의는 일단 멈춤 상태에 들어간 상황이다.

상법개정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중 특히 이슈가 되는 부분은 ‘이사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회사의 이사는 회사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돼 있다. 회사의 이익과 그와 반대되는 경우의 수가 있을 때 후자를 택하면 배임죄로 처벌받게 된다.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고, 그렇게 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주주를 위한 것이라는 취지다.

상법개정안은 여기에서 더 나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직접 주주로 연결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회사 뿐 아니라 직접 주주의 이익을 위해 충실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주식 하는 사람들이 이사의 결정이나 행보를 놓고 건건이 소송 등을 벌일 수 있고, 그로 인해 투자 등이 더 어렵게 돼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심화된다는 것이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의 주장이다. 또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구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외국계기업 임원은 “당장 단기적으로 주가엔 도움 안 돼 보여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투자 결정이 있을 수 있다”며 “기업의 이런 활동 하나하나에 소액주주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면 오늘날의 테슬라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비상장기업 237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사 충실의무가 주주까지 확대될 경우 73%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주주대표소송 및 배임 등 이사의 책임 가중(70.8%)’,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40.4%)’, ‘경영 보수화 우려(37.3%)’ 등이 꼽혔다.

민주당에선 여전히 상법개정을 당론으로 삼고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지만 현재로선 상법개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계엄 및 탄핵 후폭풍으로 국내 기업들이 한순간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1일 정치권 및 재계에 따르면 당초 상법개정안의 윤곽은 지난 4일 열릴 예정이던 민주당 주관 토론회를 거친 후 구체화될 예정이었다. 해당 토론회를 거치면 조율이 이뤄져 사실상 정책의 키를 쥔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으로 인해 정책토론회가 취소됐다. 해당 토론회는 상법개정 도입 전 필수로 거쳐야 할 단계로 여겨졌는데, 지금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탄핵정국 때문에 다음 토론회 일정도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권이 힘을 잃은 상황 속 사실상 민주당의 결정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탄핵절차가 먼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올해를 뜨겁게 달궜던 상법개정 이슈는 연말까지 계속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