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등 반도체 사업 부진···재무통 실권 상황 속 전략적 판단 오류
전영현 직속 체제 속 단기실적주의 뛰어넘는 반도체 혁신 동력 다시 찾게 될지 관심

삼성 서초사옥. / 사진=연합뉴스
삼성 서초사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최근 계엄 및 탄핵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 술자리 안주 1순위는 ‘삼성전자의 위기’였다. 자신이 삼성전자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주식을 하든 안 하든 삼성전자의 위상에 금이 가는 듯한 상황은 걱정을 낳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가 한국기업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갖는 위상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단순 기업임을 넘어 대한민국의 외교력과 위상의 밑바탕이 되는 국가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처음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된 현실과 저공 비행하는 주가가 도마위에 올랐다. 메모리시장에서 단 한번도 도전자들의 도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혁신 주도권을 내줬다는 사실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 같은 상황을 만든 그 ‘근본적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때마침 삼성 안팎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현재 삼성전자 위기상황 원인은 어느정도 퍼즐이 맞춰져 갔다.

삼성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재무통들이 실권을 쥔 상황 속에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자유로운 도전이 힘든 환경이 조성된 것이 첫 번째 배경이었다.

이후 연구원들의 사기가 꺾이고 현상유지하려는 분위기가 퍼져갔고, 그 상징적 결과로 HBM 사태가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조직문화가 관료화 된 것으로 당장 돈이 안 되도 미래기술에 투자해 결국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는 테슬라와 반대되는 분위기로 해석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HBM 성과를 거뒀다고 하지만 고위인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별히 한 것은 없고 워라밸을 챙겨준 일 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워라밸이 비결일 것 같진 않고 결국 삼성전자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분위기만 조성해줬어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연말인사를 꼽았다. 일단 현재의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연구원 출신’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메모리를 직접 챙기게 되면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 최윤호·박학규 사장 인사이동 '눈길'

이와 더불어 이번 삼성전자 연말 인사와 관련, 업계에선 두 가지 뒷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우선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삼성글로벌리서치에 신설되는 경영진단실의 실장을 맡게 된 부분이다. 삼성글로벌리서치는 삼성경제연구원의 후신 격인데, 그룹경영에 있어 일선 역할을 한다고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조직이 신설되면서 그룹 내 핵심 인물로 꼽히는 최윤호 사장이 장(長)을 맡는 것을 놓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최 사장은 그룹 실세 정현호 부회장(사업지원TF장)의 덕수상고 후배다.

또 하나는 박학규 사장이 사업지원TF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박 사장 역시 그룹 내 핵심 인물 중 하나인데, 정현호 사업지원TF장과 함께 같은 조직에 비슷한 역할을 맡는 위치에 포진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옥상옥’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국정농단 사태이후 생긴 노조로 노사갈등까지 생기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당합병’ 재판을 받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등 삼성전자에게 2024년은 쉽지 않았던 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은 삼성전자가 내년엔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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