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사업자 선정 방식 두고 갈등 심화
방사청, 8월 중 사업자 선정 방식 결정 예정

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 사진=HD현대중공업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이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관례대로라면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진행하는 ‘수의계약’ 방식이 채택돼야 하지만, “군사기밀보호법(군기법)을 위반한 HD현대중공업을 밀어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어 ‘경쟁입찰’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사업자 선정 방식이 경쟁계약으로 결정될 경우 사업을 진행하는 데 부침이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방사청 출신의 한 업계 관계자는 12일 <시사저널e>와 통화에서 “KDDX 함정 기본설계 기간만 약 3년이 걸렸는데, 기본설계를 진행해보지 않은 업체가 선도함 건조를 맡게 되면 기본설계를 다시 스터디해야 한다”면서 “기본설계한 업체가 상세설계를 이어받는 관례가 지켜진 이유”라고 말했다.

KDDX의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할 시 보안 감점을 받고 있는 HD현대중공업 다소 불리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한화오션이 상세설계를 맡게 되면 사업 진행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다. HD현대중공업이 받는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 감점은 1.8점으로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 적용된다.

KDDX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현재 해군이 쓸 이지스 구축함급 군함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내 업체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곳뿐이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올해 시작되는 ‘상세설계·선도함 건조’에 대한 수주전은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통상 군함 건조사업은 기본설계를 이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사업을 이어받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방위사업법 시행령 제61조 3항과 방위사업관리규정 89조에서도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로 방사청 개청 이후 총 18번의 함정 연구개발 중 17번이 수의계약을 통해 기본설계 업체가 선정됐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지난 2012년 ’장보고-Ⅲ 배치-Ⅰ‘의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 때다. 기본설계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공동으로 참여해 다음 단계선 경쟁입찰 방식을 추진했음에도 잡음이 없었다.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사업 계약 방식을 줄곧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사업지연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화오션이 무기체계 및 각종 장비 등을 구체화한 기본설계를 다시 연구하는 데만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만약 한화오션이 기한 안에 선도함 건조를 마치지 못하면 해군 전력화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선도함 건조 과정서 결함이 발생했을 때 기본설계를 맡은 다른 업체와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리란 보장도 없다”면서 “방위사업청 입장에서도 사업지연 가능성이 작은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 사업을 맡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지난 3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하지만 이번 KDDX 수주전은 그간 진행됐던 함정 건조 사업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KDDX와 관련한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모두 유죄가 확정되면서 수의계약의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평가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입찰에서 보안 감점을 받고 있다.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 감점은 1.8점으로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 적용된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불법 행위 당시 임원 개입 정황이 있었다”며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함정 건조 사업 추진 절차를 살펴보면, 각 사업 추진 단계별로 개별 입찰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한화오션 측은 “기본설계를 맡지 않은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술이 있겠느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선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위한 기술도 이미 확보하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부터 올해까지 KDDX에 소요되는 핵심 기술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과거 KDX-II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도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화오션은 KDDX에 최초로 적용되는 통합마스트·전전기 추진체계 통합 시스템의 핵심 기술을 보유, 이미 기술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개념수행 수행 당시 이같은 기술을 확보했고, 최근까지도 관련 기술을 연구해왔다는 게 한화오션 측 주장이다.

또 “사업 연속성을 위해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전력화 일정은 계약 체결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기본설계 자료를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에 제공하면 사업 수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KDDX 사업에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KDDX 사업관리를 담당하는 방사청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방사청은 구체적인 사업추진 방안 확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당초 이달 9일 계약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으나 오는 18일로 기한을 미뤘고, 다시 이달을 넘기는 쪽으로 정리됐다. KDDX 상세설계 사업자 선정 방식을 수의계약으로 하든 경쟁입찰로 하든 방사청은 비난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 출신의 한 업계 관계자는 “방사청의 존재 이유는 무기체계 사업의 납기조정, 성능 평가 등 사업관리를 하는 데 있다”면서 “법과 규정을 통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예전처럼 군에서 사업관리를 하고 방사청은 조달만 하던 때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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