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중반, 자산 축적·시간 여유 갖기 어려워”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혼연령 평균은 남자 34세, 여자 31.5세로 전년 대비 남자는 0.3세, 여자는 0.2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초혼 14만9649건 중 남성 40세 이상은 10.3%(1만 5390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40세 이상의 초혼 비중이 10%를 넘어선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결혼 연령대가 갈수록 높아진다. 결혼이 늦어지니 출산 시기 또한 늦어지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늦어진 결혼 시기가 출산율을 낮추는 원인이 됐단 지적이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30대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출산도 미루거나 포기한다.
5년차 공무원으로 지방에서 근무 중인 김조원(36, 가명)씨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었지만 결혼은 아직이다.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돈과 시간에 발목이 붙잡혔다.
김 씨는 “살면서 결혼은 꼭 필요하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다”면서도 “결혼이 어렵다 생각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시간이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돈과 시간 등 여건이 충분하다면 계획을 잘 세워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Q. 또래보다 결혼이 조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 결혼 계획은 있나
“40세가 되기 전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실제로 또래 친구들 60~70% 정도가 결혼한 상태다. 평소 친구들과 만나면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키우기 힘들진 않은지, 결혼생활은 할만한지, 처가나 시댁은 괜찮은지 등이 대화 주제다. 물론, 미혼 친구들과는 아기를 낳을 생각이 있는지, 집은 구했는지, 결혼할 돈은 있는지 등 현실적인 얘기를 주로 하게 된다.
결국, 금전 부분에 많은 고민이 있고, 이 때문에 결혼과 자녀계획 등이 더 망설여진다. 30대 초중반 청년들에게는 자산을 축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돈을 모을 때까지 결혼을 늦춰야 하고, 결국 결혼이 늦어지면 출산도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Q. 젊은 공무원들이 자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나 같은 경우 처음 수원에서 일반 회사에 취업해 4년 동안 근무하다가 당시 코로나도 있었고, 임금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공무원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경남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공무원 급여가 저연차 때는 연봉 2000만원대 후반 정도 되는데, 그나마 지방에서 결혼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도시나 수도권의 경우 공무원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Q. 결혼한다면 자녀계획은 있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 자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앞선다. 다만 배우자가 원한다면 좀 더 고민해보고 1명 정도는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은 결혼 전에 잘 얘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무엇보다 내가 사랑과 관심을 많이 주고, 아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잘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Q. 출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정부의 어떤 지원책이나 정책이 필요할까
“개인의 시간과 금전에 대한 보장이 이뤄지는 쪽으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정부에서 출산장려금이라든지 여러 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아직 자녀를 키워보지 않아서인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막연함 때문에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앞서는 것 같다. 일회성에 그치는 수당 지급도 좋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안정적인 지원책과 젊은 부모들이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정책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 개인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공무원직을 기준으로 본다면 직급이 높거나 고연차 선배들이 먼저 나서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 등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자연스럽게 후배 직원들도 눈치 보지 않고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Q.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인구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감소한다면 나라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저출산 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선택과 가치관을 향해 불편한 시선을 보낼 필요도 없다고 본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 여유 없이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무조건 ‘애를 많이 낳아야 애국자’란 인식을 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등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청년들이 아이를 갖고도 그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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