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캐나다 등 수십억원대 잠수함 수주전 앞둬
특수선 기밀 유출·인력 유인이 불러온 갈등··양사 협력 가능성 축소
한화오션, 단독 수주 자신감···HD현대, LIG넥스원과 협력 관계 구축

한화오션이 건조 중인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 /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건조 중인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 / 사진=한화오션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3000톤(t)급 잠수함을 도입하는 폴란드의 ORKA(오르카) 프로젝트와 캐나다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 등 굵직한 글로벌 잠수함 프로젝트 수주전을 앞두고 경쟁에 나섰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부의 ‘코리아 원팀’ 전략에 맞춘 협력 가능성에 대해 언급해왔으나, 최근 방사청 제재와 관련해 양사 갈등이 커지면서 협력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분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올해부터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향후 캐나다, 필리핀 등이 추진하는 잠수함 도입 사업에서 글로벌 수주 경쟁을 펼친다.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는 3000t급 잠수함 3~4척을 오는 2034년까지 확보하는 노후 잠수함 교체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3조원대로 추정된다. 해당 프로젝트는 지난해 입찰을 진행, 총 11개사가 참여 의사를 전했다. HD현대와 한화오션 모두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본 게임은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이다. 캐나다 해군은 노후화된 잠수함을 교체하기 위해 3000t급 잠수함 8~12척을 도입할 계획이다. 사업 규모는 총 60조원에 달한다. 잠수함 척당 가격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지관리 사업(MRO)을 포함하면 사업 규모는 최대 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지난해까지만 해도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수주전이 열리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원팀’을 구축해 일본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은 미쓰비시와 가와사키중공업이 한 팀을 이뤄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수십억대 규모의 사업인 만큼 캐나다 측이 절충 교역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해외 잠수함 사업 수주전에서 협력할 가능성도 작지 않았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지난해 말 한 포럼 행사에서 “(잠수함 수주전에서) 코리아 원팀을 준비 중에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를 놓고 여러 기업이 함께 참여해야 국가 차원의 협력과 지원을 받기 쉽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하지만 양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도 각개전투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특수선을 둘러싼 HD현대의 군사 기밀 유출 건이 갈등의 뿌리가 됐다. HD현대중공업의 직원 9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과 관련한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지난해 말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 직원 9명은 지난 2012년부터 약 3년간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KDDX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했다.

이와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입찰에서 보안 감점을 받고 있다.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 감점은 1.8점으로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 적용된다.

지난달 27일 방사청 계약심의위원회가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행정지도’로 의결하면서 양사 갈등이 더욱 격화하는 모양새다. 

방사청의 결정에 한화오션은 즉각 반발했다. 한화오션은 지난 4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을 수사해달라고 고발하는 한편 다음 날인 5일 설명회를 열고 고발 사유를 밝혔다. 이 자리서 한화오션 측은 KDDX 개념설계 보고서 유출 사건 당시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증거 자료를 공개했다.

조선업계의 인력 부족 현상도 양사 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22년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체들은 ‘부당 인력 유인·채용’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HD현대중공업을 신고했다 HD현대중공업이 인력을 과도하게 빼앗아 간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경쟁사의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채용해 경쟁사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대부분 조선업체는 공정위 제소를 철회했지만, 한화오션은 공정위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HD현대 조선 3사를 상대로 관련 조사에 착수했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공정위 제소 후 자료조사에 응한 것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나 결과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국내 첫 수출 잠수함 나가파사함. /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건조한 국내 첫 수출 잠수함 나가파사함. / 사진=한화오션

최근 양사는 협력 관계 구축보다는 경쟁 관계 구도를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HD현대중공업은 전투체계 분야 선두 업체 한화시스템 대신 LIG넥스원과 손을 잡았다. 양사는 수출형 잠수함에 탑재될 통합 전투체계를 함께 개발한다. 

한화오션은 그룹 내 방산 시너지를 활용해 단독 입찰로도 경쟁사와 수주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화시스템의 무인 전투체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잠수함용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을 결합해 글로벌 잠수함 시장서 우위를 점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잠수함에 납품하는 200여개 국내 협력업체들이 한 팀을 이뤄 수주 및 향후 유지 보수 사업을 같이 영위하는 개념으로 ‘원팀코리아’를 이뤄야한다는 게 한화오션 측 설명이다. 한화오션 측은 “캐나다 사업이 구체화 될 상황에 맞춰 준비 중이며 국익 차원에서 (수주) 가능성이 큰 업체가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한편, 한화오션은 수주 이력 면에서 HD현대중공업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오션은 지금까지 22척, HD현대중공업은 9척의 잠수함을 수주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말 방위사업청과 ‘장보고III 배치(Batch)-II 3번함 건조사업’을 위한 본계약을 맺기도 했다. 해당 수주로 한화오션은 대한민국 해군이 발주한 24척의 잠수함 중 17척을 건조하게 됐다. 

게다가 한화오션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잠수함 수출 실적을 갖고 있다. 폴란드와 캐나다가 요구하는 3000t급 잠수함 건조 경험도 한화오션이 3척으로 1척인 HD현대중공업을 앞지른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이 잠수함 수주 실적을 갖고 있긴 하지만, 잠수함 건조를 위한 A-Z가 가능한 역량이 있느냐는 측면에서는 사실상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단독 수주가 가능한 한화오션이 ‘팀코리아’를 요구하는 HD현대중공업 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양사가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건조 기술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양사가 협력을 통해 수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이어 “일본의 경우 수주에 실패하긴 했지만 지난 호주 잠수함 수주전에서 가와사키와 미쓰비시 2개의 조선소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면서 “잠수함 사업은 규모가 워낙 커 국내 기업 간 상호협력을 통해 일본 등과 경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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