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당분간 산은 등 채권단의 관리체제 유지···조만간 재매각 나설 듯
"영구채 처리, 경영권 관련 문제 등 까다로운 매각 조건 완화해야"
"민간과 공공 함께 참여하는 '국민 기업' 구조로 가야" 의견도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 1호 ‘HMM알헤시라스호’. /사진=HMM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 1호 ‘HMM알헤시라스호’. /사진=HMM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HMM 매각이 최종 불발됐다. 인수 측인 하림과 채권단 측 산업은행이 7주간의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다. 산업은행 측은 조만간 재매각에 착수한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해운업황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빠른 시일 내 인수 희망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성공적인 HMM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선 매각의 초점을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지분구조를 재편하는 쪽으로 맞춰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운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자금력이 충분한 민간자본이 경영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해양진흥공사(해진공) 등 공공기관이 일부 지분을 갖춰 민간을 견제하는 지배구조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7일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산은·해진공은 7주에 걸친 협상 기간 상호 신뢰 하에 성실히 협상에 임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고 전했다. 매각 측인 산은과 해진공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JKL 컨소시엄과 전날 자정까지 협상을 이어갔지만, 결국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매각 협상 과정은 지난해 말부터 잡음이 많았다. 지난 1월 23일까지 매각 관련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던 산은과 해진공은 하림-JKL 컨소시엄과 지난해 12월 20일부 터 협상 테이블을 꾸렸다. 배당 제한과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등에 대한 매각 측과 인수 측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협상 기한은 전날인 6일까지 2주 밀렸다.

매각 측이 막판까지 수용하지 않은 부분은 하림의 재무적 투자자인 JKL파트너스의 ‘5년간 주식 보유 조건’을 예외로 해달라는 요구였다. HMM 지분을 더 빠르게 처분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추가해달라는 것이다. 하림은 1조6800억원의 영구채 처리에 대한 유예 입장을 포기하기까지 했지만, 해당 조건은 포기하지 못했다. 해진공 측은 단기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JKL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 등 채권단 측은 HMM 몸값이 최정상일 때 매각하기 위한 ‘조기 매각’ 전략을 추진해왔다. 장기적으로 해운업 현황이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통상 2주가량이 소요되는 매각 컨설팅 절차도 건너뛰는 등 매각에 속도를 냈다.

매각 협상 불발로 HMM은 당분간 지분 57.9%를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관리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미 해운업 현황 불확실성이 커진 현재 매수자를 단기간에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의 특성상 한번 불황에 빠지면 장기간 이어진다. 최근 홍해 사태로 운임료 상승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상화가 된다면 다시 운임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HMM 재매각이 추진되더라도 매각을 준비하는 과정서 이번에 문제가 된 영구채 처리, 경영권 관련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또한 인수기업에 대한 대출 지원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산은과 매각 후 일부 지분 보유 방침을 내건 해진공 등 매각 측의 매각 조건이 까다로워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이번 HMM 매각 무산을 놓고 “이제는 대기업이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는 희망적 목소리도 나온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이번 매각 협상을 통해 HMM의 가격, 인수조건이 모두 명백하게 구체화됐다”면서 “해당 조건을 수용하는 자기자본 조달 능력이 확실한 기업이 곧 인수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구 회장은 정부와 민간기업 등이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로 매각 작업이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구 회장은 세계 5위 해운사인 하팍로이드의 지배구조를 예로 들며 “인수 주체 다양화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민간자본을 견제하는 구조 또한 바람직하다”고 했다.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달라”는 하림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내 유일 국적선사인 HMM이 가진 공공성을 고려한다면, 민간자본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는 제한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하림이 HMM을 인수하게 될 경우 전날 파업을 위한 쟁의권을 확보할 예정이었던 HMM해원연합노동조합(해상노조)는 파업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노조도 HMM의 지배구조가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과 민간이 결합된 형태가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HMM의 효율적인 민영화를 위해 회사의 지분 분배 관련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전정근 HMM 해상노조 위원장은 이날 시시저널e와 통화에서 “회사를 민영화하는 과정서 지배구조를 민간에 넘기면서도 공공, 지역사회가 함께 갖고 가는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해운업이 갖는 특수한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민간과 공공이 서로 견제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노조도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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