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지난해 말부터 열연강판 유통 가격 인상 추진
일각선 "수입산 더 늘어날 것" 경고
中·日 열연강판 공세에 반덤핑 제소 가능성까지
후방업계 "국내 시장 독점 구조···수입 규제시 부담 증가"

현대제철의 선박용 후판. /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의 선박용 후판. / 사진=현대제철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철강 업계가 전방 산업인 건설 업황 부진으로 보릿고개를 보내는 가운데 해법으로 열연 강판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까지 검토하는 등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짜내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 같은 조치가 후방업계의 반발을 부추겨 수입산 철강 수입이 늘어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결국 고로사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주장이다. 

철강업계는 저가 수입재 공세가 지속될 경우 열연 강판 뿐만 아니라 2차제품도 중국산 등 수입재가 밀려와 결국 국내 철강 시장 전체가 수입재에 잠식당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 실적 하락한 철강업계 "안 팔리니 더 비싸게"

5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원료가격 부담에 지난해 말부터 가격 인상을 추진 중이다. 두 회사는 지난 1월 열연강판 가격을 톤(t)당 86만5000원에 유통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가격(84만4000원) 대비 2.5% 인상한 수치다.  

이달에는 열연강판 가격을 t당 5만원가량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는 지난달 31일 진행된 2023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 내에 월별로 단계적 가격 인상 계획을 갖고 있다”며 “타 제품의 경우도 업계 상황을 고려해 그동안 반영하지 못했던 원료가격 인상을 반영하기 위해 고객사와 인상폭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판매 실적이 감소한 철강업계가 올해 수익성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으면서 ‘더 비싸게’ 팔아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모양새다. 지난해 하반기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중국산 등 저가 제품 수입이 급증하면서 제품 가격 인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제품 가격이 떨어졌는데 건설 경기 둔화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철강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전년 대비 27.2% 감소한 3조5314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20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철강업계는 가격 인상을 통해 지난해보다는 개선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30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에 업황이 저점을 확인한 후에 2분기부터 소폭 반등해서 안정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반면 일각에선 국내 철강사들의 이번 가격 인상이 중국과 일본 등 해외 철강 제품의 수입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기초소재인 열연강판 가격이 오르면 이를 받아다 쓰는 재압연사의 제품 가격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적자 판매를 피하기 위해선 값싼 수입산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제압연사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 일본산 철강재 등 대체품을 찾을 것이란 설명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 사진=포스코

◇ 수입산 늘자 '반덤핑' 규제 검토···후방업계 "독점 지위 악용 가능성"

철강업계는 저가 중국산 철강재에 대응하기 위해 반덤핑 제소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수입산 열연강판에 반덤핑 관세 대응을 검토 중인 것과 관련해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수입산 철강재가 낮은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수입재가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반덤핑 형태의 불공정 제품이 한국철강 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이 문제로 거시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면서 “수입재 증가로 국내 조강사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국내 철강산업 생태계 존립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의 저가 철강재 수입은 크게 늘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일본산 열연강판 수입 규모는 422만t으로 전년 대비 24% 늘어났다. 수입산 유통 가격도 국내산에 비해 10% 낮은 수준으로 형성되고 있다. 

압연과 강관을 생산하는 중견·중소 철강사는 반덤핑 관세 추진 가능성에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철강 ‘빅2’로 불리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 이들이 원하는 가격에 철강을 판매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온 양사의 가격 인상 행보가 ‘배짱 장사’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열연강판은 고로를 가진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회사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양사가 국내 시장에 판매하는 열연강판은 약 300만t으로 국내 점유율은 70~80%대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재압연사는 양사에 열연강판을 받아와 후공정을 통해 냉연강판, 도금강판 등 2차 제품을 만든다. 빠른 납기를 필요로하는 업체는 결국 수입산보다 웃돈을 주고 국내 열연 강판을 사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중국의 저가 수입재 공세가 지속된다면 국내 철강 시장 전체가 수입재에 잠식당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반덤핑 제소 등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압연사, 강관회사 등이 중국산 저가재로 2차제품을 만들어도 중국산 2차제품 자체가 덤핑으로 들어오면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다”면서 “그때는 이들도 같은 논리로 2차제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의견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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