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004년 간부사원 취업규칙 변경 시 과반노조 동의 안 받아
간부사원들 2심서 승소···대법 ‘동의권 남용’ 심리미진 사유 파기환송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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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간부사원들만 해당되는 취업규칙을 바꿀 때 승진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 전체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지를 두고 현대자동차가 간부사원들과 장기간 법적 분쟁 중인 가운데, 양측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놓고 뚜렷한 입장차를 보였다.

사측은 쟁점인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동의권 남용 법리) 여부를 심리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법원이 변경된 취업규칙의 합리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근로자 측은 2심과 대법원 모두 합리성이 없어 취업규칙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고려했던 과거 판례를 버리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추가로 심리하라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것으로,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1부는 지난달 30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파기환송심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부는 “이 사건은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그 유효성을 인정했던 종전 판례(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새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따져보라고 한 것이다”라며 “상고심은 집단적 동의권 남용 등 더 엄격한 조건을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항소심에서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 주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회사가) 일부 패소했는데 (동의권 남용 여부 등) 좀 더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면 실제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피고인 현대차의 대리인은 “대법원은 이 사건 간부사원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적 합리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추가로) 사측이 진지한 노력을 다했는지, 근로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반대했는지를 심리하라고 한 것이다”라며 “전합 별개의견은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적 합리성이 분명하게 인정된다고 판단했고, 다수의견 역시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대법원은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이 합리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만큼 동의권 남용이 인정되기 좋은 사안은 없다”라며 “추가 서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반면 원고 측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취업규칙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라고 반박했다. 전합은 동의권 남용 여부에 관해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에는 법리 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는 것일 뿐, 파기환송전 원심(2심)과 전합 모두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사회적 합리성을 불인정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과거 판례에서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은 헌법정신과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원고 측은 “2004년 이 사건 취업규칙 작성 시, 현대차 사업장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존재했으나, 동의권 남용 기준인 그 노동조합이나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있었는지 여부와 파기환송 사유인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단순사실에 관해 (피고는) 아무런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동의권 남용에 대해 회사가 소지하고 있는 문서가 있다면 법원에 제출해 달라며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2004년도 간부사원취업규칙 작성 시 현대차가 배포한 '간부사원취업규칙 제정안내'서. 법률검토에서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한만큼 (파기환송심의 쟁점인) "근로자의 동의권 남용"이 있었는지 여부는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게 원고 측 주장이다. / 사진=현승건
2004년도 간부사원취업규칙 작성 시 현대차가 배포한 '간부사원취업규칙 제정안내'서. 법률검토에서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한만큼 (파기환송심의 쟁점인) "근로자의 동의권 남용"이 있었는지 여부는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게 원고 측 주장이다. / 사진=현승건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연구일반직지회 지회장 제공.

이에 재판부는 원고의 문서제출명령 신청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그 내용 역시 불분명하다며 피고 측 준비서면을 받아본 뒤 문건을 특정한다면 추후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이 사건 취업규칙의 유효성에 대한 구체적 판단 없이 추가심리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우리 재판부로서는 심리를 진행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면서 “양측의 추가 서면과 반박 서면을 제출하도록 다음 기일을 지정하겠다”라고 정리했다. 두 번째 변론기일은 법원 인사 등을 고려해 내년 3월로 지정됐다.

이번 사건은 현대차가 2004년 7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기존 취업규칙과 별도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에는 종전 취업규칙과는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부여하던 ‘월차휴가제도를 폐지’하고, 총 인정일수에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차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해 간부사원 중 89%의 동의를 받았으나, 과반수 노조인 현대차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후 간부사원인 원고들은 “취업규칙상 연월차휴가 관련 규정은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으로서 무효다”라며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 등을 청구하는 이 소송을 냈다.

간부사원들은 1심에서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일부 승소했다. 2심은 이 사건 취업규칙은 불이익변경에 해당하고, 간부사원이 아닌 승진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 전체가 동의의 주체에 해당하므로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현대차는 현대차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2심은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연월차휴가 부분은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도 했다.

현대차는 상고했지만 의미있는 반전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전합은 지난 5월 “(원심은) 종전 판례의 태도에 따라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판단하였을 뿐이다”라며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에는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라고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한편 피고인 현대차는 파기환송심에서 대형 로펌 3곳을 추가로 선임했다. 대법원에서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 외에 법무법인 율촌, 태평양, 화우 등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추가로 선임하며 대리인단의 몸집을 키웠다.

원고인 간부사원 측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연구일반직지회 현승건 전 지회장 1인이 선정당사자로 소송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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