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취향·관심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소통 문화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경험 중 하나는 단체 영화 관람, 단관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종종 학교에서 가곤 했던 단체 영화 관람 기억이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영화관에 가는 일은 가족들이나 연인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이벤트의 의미가 컸다.

영화관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있었고, 함께 보는 관객의 수가 많아질수록 커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 관람을 종종 즐겼다. ‘쥬라기 공원’, ‘알라딘’, ‘타이타닉’ 등 그 당시 봤던 영화는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과 ‘함께 보기’라는 의미가 컸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동아리나 학과 친구들, 그리고 영화나 공연을 주로 분석하거나 공부하는 선후배들과 단체 관람을 했다. 그리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대학에서 영화에 대한 분석글이나 에세이를 써오라는 과제를 하면 대체적으로 학생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그 영화를 시청한다. 영화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개봉하는 일도 많을뿐더러, 학생들은 강제적으로 타임라인이 편성된 채널을 통해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텍스트에 대한 집단적 사고를 할 기회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에세이를 써 오라고 시켰는데, 50명의 학생 중 단 두 명이 그 텍스트에 대해 서로 이야길 나눠 봤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혼자 보고, 혼자 에세이를 작성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궁금하지 않냐는 질문에 많은 학생이 유튜브나 포스팅된 리뷰를 찾아본다고 응답했다.

아주 작은 집단의 케이스지만, 글로벌 통계자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영화·영상 시장에서 극장, OTT, DVD블루레이 시장 규모 비중은 각각 31.9%, 61.2%, 7%로 나타나 OTT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세계적으로 팬데믹 이후 극장으로 가는 관객의 수는 감소하고 있고, 이는 영화 관람의 이용행태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관객은 OTT를 통해 영화를 감상하고, 이 때문에 혼자 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OTT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혼자 보는 관객의 수가 적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다수의 관객이 부재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관람행태의 변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산업적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적 관점에서 동시 관람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예전에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만한, 다시 말해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주제와 소재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갖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타이타닉’과 같은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세대가 함께 혹은 다수가 보았던 영화였기에, 그들은 그 이야기에 대해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수의 시청자·관객들은 자신만의 채널과 콘텐츠를 소구하느라 함께 보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콘텐츠가 그리 많지 않다. 다들 누군가는 봤고, 누군가는 듣지도 못했거나 관심이 없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듯 제목만 읽어봤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소통은 결국 자신만의 취향과 관심사 중심으로만 재편(필터버블)된다. 이제는 개개인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갖고 이에 따라 이야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취향의 공동체가 온·오프라인 모두에 편재돼 있어 일상에서 소통이 가능한 집단으로 존재한다면 당신은 매우 행운아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발화만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취향을 갖고 공감을 눌러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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