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과 다른 스토리 재현 방식, 시청자 삶의 변화에 영향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최근 가장 많은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장르 중 하나가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일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열풍을 일으키고, ‘어쩌다 마주친 그대’, ‘완벽한 결혼의 정석’, 그리고 지금 절찬리 방영되고 있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모두 디테일한 설정은 다르지만, 인생의 어느 기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금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일본 또한 유사한 장르 흥행이 지속되고 있는데, ‘도쿄 리벤저스(일명 도리벤)’는 타임루프, 즉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지속적으로 돌아가 첫사랑의 죽음을 막으려는 청년이 주인공인 연재 만화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불러일으켰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연장선상으로 지난해 일본 NTV에 편성된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 또한 주인공이 죽음 이후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준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드라마는 어떤 굉장한 목표(예를 들어 복수와 같은)를 위해 환생했다기보다 환생을 통해 소소하고 보편적인 일상 속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브러쉬 업 라이프’의 주인공인 아사미는 35살 공무원으로, 지역 소도시에서 함께 자란 동창생들과 종종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고, 생일을 축하하는 등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연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다음 생에 ‘개미핥기’로 태어날 바에 덕을 쌓아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다시 자신의 인생을 리플레이 한다.

여기서 경험하는 아사미의 삶은 1회차 인생과 미묘하게 다르지만 이전과 또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아사미는 중대한 사건이나 미스테리를 해결하는 것 보다는 주변의 사람들을 도와가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다만 처음과 달리 인생 회차별로 아사미는 각각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데, 그러면서 인생이 또 다른 시각으로 읽히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아사미는 최선을 다해 N회차의 인생을 살아내고 덕을 쌓기 위해 주변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드라마 안에서 삶의 궤적이 변화하는 동안 나는 일본의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35살 주인공의 삶이 생각보다 한국 미디어에서 반영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미묘하게 다르단 걸 알게 됐다. 우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아사미는 서른다섯살이 될 때까지, 심지어 더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가족 중 그 누구도 결혼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것은 N회차 인생이 지속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주요인물인 아사미와 그의 친구들 또한 사랑이나 연애에 노출되는 서사의 빈도가 드물다. 아사미는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몇 회차에 걸쳐 언급하긴 하지만, 그것은 환생 이후 그를 마주쳤을 때뿐이다.

동시에 아사미는 다회차의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직업(공무원, 약사, 방송국 PD, 의학박사 연구원, 파일럿)을 경험한다. 아사미가 방송국 PD로서의 삶을 살 때, 배경으로 등장하는 FD뿐만 아니라 오디오 감독이나 사운드 스태프, 등등의 성별 구성이 굉장히 다양하단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붐 마이크를 들고 있는 스태프들이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거나, 총괄 PD가 여성으로 재현된다거나 하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회차의 인생에서 아사미가 파일럿이 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여성이 기장이 된다는 점을 ‘특별히’ 부각하지 않았단 점이 의외였다.

이것이 의도된 것이든, 의도되지 않은 것이든 특별하지 않게 재현되는 주인공의 삶들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내가 이전까지 미디어에서 보아왔던 삶의 양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스쳐지나가듯 자연스럽게 재현되는 장치들이 어쩌면 현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이미 가져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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