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 심화에 따라 희미해지는 한국적인 특성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느 날 운전을 하면서 무작위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익숙한 느낌의 팝이 흘러나왔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분명 한국음악은 아닌 듯했다. 빌보드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아메리칸 팝 사운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레코딩의 느낌이 그랬고, 확신했던 건 가사가 전부 영어였단 점이다. 영어 가사에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영어권 가수일거라 확신하고 앨범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유명한 한국, 그것도 케이팝 밴드의 곡이었다.

이후 케이팝 밴드들의 앨범을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는데, 유난히 올해 하반기 나온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에 한국 가사가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예전에는 대중가요에서 후렴구에만 들렸던 영어가사들이, 올 한해 나온 가수들의 앨범에 반대의 경우(즉, 후렴구만 한국어)인 경우도 제법 있었다. 100% 영어 가사로 부른 한국 가수들도 꽤 존재했다. 이런 현상이 케이팝 내부에서 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케이팝은 이제 국내 시장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 케이팝이 빌보드에 차트인을 시작한 지는 꽤 됐고, 케이팝 그룹에는 한국어 외에도(혹은 한국어를 못하더라도) 영어를 자국어로 사용하는 멤버들이 꽤 많다. 한류의 초기, 케이팝을 포함한 케이콘텐츠는 글로벌이 아시아 지역으로만 한정돼 있었는데, 그때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케이팝 밴드 안에서의 구성원을 한국인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등과 같은 국적의 연습생들이 한국에서 아이돌을 꿈꾸며 데뷔했고, 실제로 그들이 데뷔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연습생들이 한국에서의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들은 한국의 국적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일정 정도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해외 활동을 진행해나갔다.

그러나 지금의 케이팝은 일상적으로 전 세계, 즉 글로벌 팬덤과 마주한다. 케이팝 밴드는 이전처럼 국내에서 먼저 데뷔한 뒤, 일정 정도 인기를 얻은 다음 순차적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닌 국내와 글로벌 데뷔를 동시에 추진한다. 그들은 국내외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며, 데뷔 때도 한국어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용어(즉 영어)를 통해 팬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앨범도 단순히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경우보다는 글로벌 팬덤이 훨씬 향유하기 쉬운 방식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팝에서 케이가 사라지는 경우들도 종종 발견된다. 실제로 글로벌화된 케이팝의 생산에는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게 되고, 이는 국적을 지운 채 혼종의 모습으로 전 세계 플랫폼에서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정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런 변화는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보기 힘들다. 다만 케이팝이 초반 글로벌로 유통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의 감각과 지금의 케이팝의 대중적 감각은 매우 다르다. 과연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은 가능한가. 특수성과 보편성이 함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케이팝을 통해 되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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