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신약 개발 모델, 효율 낮아···“1조원 투자해 10년 동안 신약 하나 승인”
“마스터 프로토콜, 제약사 개발 비용 줄이고···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 임하게 해”
대학·정부 등 제 3기관이 프로토콜 설계·유지하고, 제약사가 참여하는 방식 필요

21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사저널e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국제포럼에 백승재 한미약품 상무이사가 강연자로 참석했다. / 사진=최기원PD
21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사저널e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국제포럼에 한미약품 최고의학책임자(CMO) 백승재 상무가 강연자로 참석했다. / 사진=최기원PD

[시사저널e=서지민 기자]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마스터 프로토콜’ 형식의 신약 개발 임상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21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사저널e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국제포럼에 한미약품 최고의학책임자(CMO) 백승재 상무가 강연자로 참석, ‘혁신적인 신약 임상 설계’를 주제로 신약 임상 모델의 혁신 필요성을 설명했다. 

신약 개발은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분야다. 그러나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매우 낮아 연구개발의 효율도 매우 떨어진다. 2010년 네이처에 따르면, 하나의 신약이 허가를 받아 실제로 사용되는 데까지 평균적으로 13년이 걸리고, 8억 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승인받은 약물의 평균 개발 비용도 1조5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백 상무는 “제약업계가 매 9년마다 신약 개발을 위해 1조원을 투자했을 때, 실제 인허가까지 받는 신약의 수는 195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며 “1조원을 투자해도 10년 동안 약 하나를 못 만드는 시대”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 제약업계는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마스터 프로토콜’ 형식의 임상 설계안이다.

기존의 신약 임상 설계는 하나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연구개발 스터디가 필요하다. 하나의 신약에 맞춘 임상 1·2·3상 단계를 전부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 상무는 “현재 국내에서는 5개의 제약사가 코로나 백신을 만들고 있는데, 이 제약사가 모두 각자의 임상 설계를 가지고 있다”며 “기존의 신약 임상 설계는 마치 하나의 우주선을 쏘고 나면, 또 다른 우주선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쏘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21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사저널e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국제포럼에 백승재 한미약품 상무이사가 강연자로 참석했다. / 사진=최기원PD
21일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사저널e 주최로 열린 제약바이오 국제포럼에 참석한 백승재 한미약품 상무가 ‘혁신적인 신약 임상 설계’를 주제로 강연 중이다. / 사진=최기원PD

반면 마스터 프로토콜은 먼저 모집한 임상 대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여러 신약들을 실험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개발 중인 A·B 신약이 있다면 400명을 임의추출(randomization)해서 1대1로 A군과 B군을 나눈다. 이후 A군이 B군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면 이때부터는 A군에만 더 많은 환자를 배정한다. A군에 80명을 더 배정한 후에도 A군이 더 효과가 높게 나타난다면, A약에 대한 임상만 진행하는 식이다. 

백 상무는 “기존의 임상 설계를 쓰면, A군·B군에 각 200명을 배정해 모든 임상을 시행해야 한다”며 “그러나 방금 설명한 마스터 프로토콜 설계도를 활용하면 80명만으로도 신약 성공률을 확인할 수 있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스터 프로토콜 방법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분야는 유방암이다. 유방암 항암제 개발에 쓰이는 ‘I-SPY2’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이미 10년 넘게 진행 중이다. 실제 I-SPY2 임상 설계에 들어간 신약 중 총 7개가 인·허가를 받아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신약 규제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나 EU도 마스터 프로토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백 상무는 “각각의 제약사들이 마스터 프로토콜에 참여해 효과가 있는지 빠르게 확인하고, 또 신약 개발 포기도 빠르게 할 수 있게 된다”며 “이런 측면에서 복잡성은 증가하지만 확실하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임상 설계안이 환자 위약군을 설정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마스터 프로토콜은 위약군이 따로 없어 환자들이 치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며 “제약사와 환자 모두에게 이득인 임상 설계안”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프로토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가 아닌 제3의 기관이 프로토콜을 진행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백 상무는 “제3의 기관에서 임상 설계를 장기간 유지해야 제약사들이 결과를 가지고 너무 유리하게 해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I-SPY2도 스탠포드 대학에서 가지고 있다. 대학의 커뮤니티나 아카데미, NGO, 정부, 퍼블릭 펀딩 등 제3의 기관이 주체가 돼서 임상 설계를 디자인하고 제약사가 참여해 자신들의 약을 테스트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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