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실조사 논란 와중에 ‘제품결함’ 논란 부상···“섣부른 판단”
업계 “내수 공급 배터리보다 수출 물량이 더 많아···한국 外 화재 보고 전무”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정감사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가 화두로 떠올랐다. 연이은 화재에 대해 정부가 원인 규명에 나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결과와 대책을 발표했는데, 조사 과정 및 사후 조치 등과 관련한 허점이 지적되면서부터다. 규명 과정에서 배터리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LG화학·삼성SDI 등 관련업계가 긴장하는 분위기다.

8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의 화재 원인 조사결과는 지난 6월 발표됐다. 당시 배터리 결함 문제는 화재 원인에서 제외됐다. 조사 과정에서 국내 수주 활동이 사실상 중단돼 막대한 손실을 입은 두 회사는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지만, 이번 국감을 통해 ESS가 재차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전날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서는 ESS 화재 원인 조사 과정에서의 허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배터리 결함에 대한 의구심은 이 과정에서 촉발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훈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총 26건의 ESS 화재사고 중 23건(88%)에서 LG화학(14건)과 삼성SDI(9건) 배터리가 사용됐다.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후 연속적으로 발생한 세 건의 화재사건 현장에도 모두 이들 두 회사의 배터리들가 있었다. LG화학 배터리가 사용된 경우가 2건, 삼성SDI 배터리가 장착된 경우가 1건 등이었다. 특히, 그동안 화재가 난 LG화학 배터리들의 경우 모두 중국 난징공장에서 2017년 2~4분기 사이 생산된 제품들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산업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김준호 LG화학 부사장과 임영호 삼성SDI 부사장이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여론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관련 내용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배터리화재 원인이 배터리다’는 여론이 포털과 각종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특히 김 부사장이 “난징공장 초도 물량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하면서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이와 관련해 LG화학은 “제품 결함을 숨기거나 교체를 회피한 바 없으며, 잇단 화재로 인해 선제적인 조치의 일환으로 2017년 남징공장에서 제작된 배터리를 포함한 ESS에서는 70% 제한 가동을 실시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시행 중”이라며 “손실비용 또한 당사가 부담해 사업주들의 부담도 최소화할 계획이다”고 해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ESS 업계는 “섣부른 판단을 지양해 달라”는 반응이다. 화재와 관련한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배터리 결함이 지적될 순 있으나, 화재의 원인으로 단정 짓기엔 이르다는 의미다. 특히 △LG화학과 삼성SDI의 국내 ESS 점유율이 3분의 2가량이라는 점 △해당 제품들이 공급된 해외 ESS 화재 보고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 등을 들어 배터리 문제만으로 보기엔 허점이 크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ESS에 공급된 LG화학 배터리가 모두 난징공장에서 특정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나타났으나, 전체 화재를 보면 특정 업체 혹은 특정 모델을 지칭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난징 배터리에 결함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결함이 화재를 일으켰다고 해석하기보다, 특정 상황에서 취약했음에 초점을 맞춰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다른 업체들에 비해 공급량이 많은 상황에서 화재 현장에서 LG화학과 삼성SDI 배터리가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섣부른 낙인은 해당 업체들이 해외 수주 활동을 펼치는 데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고,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전가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다소 결함이 있었다지만 LG화학 난징공장 초도 배터리 역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된 제품”이라며 “삼성SDI가 국내에 공급한 ESS 배터리들도 내수 공급보다 수출 물량 비중이 더 높은데, 해외에서의 화재 보고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국내 ESS의 특징적인 면을 살피는 것이 화재 규명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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