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재 발생한 경북 하동 ESS, LG화학 국산 배터리 최초 장착 사례
ESS 시장 규모, 2.8조→23.8조 전망···연속 화재, 韓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전성 강화 대책이 나온 지 4개월 만에 4건의 화재사고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배터리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ESS 화재가 유독 국내에 집중된 탓에 해당 설비에 장착된 배터리 제조사를 중심으로 우려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특히 관련시장이 팽창하고 있어, 원인 규명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세계 시장 공략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ESS에서 처음으로 화재가 발생한 때는 지난 2017년 8월이다.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를 포함해 현재까지 27기의 ESS가 갑작스레 불에 탔다. 특히 LG화학·삼성SDI 배터리가 장착된 비율이 높았는데, 이 두 업체는 글로벌 ESS 배터리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는 업계 선도 기업들이다.

두 기업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합쳐서 80%를 상회한다.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삼성SDI가 45% 안팎의 점유를, LG화학이 35% 안팎 수준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화재가 난 27기의 ESS 중 15기에는 LG화학의 배터리가, 9건에는 삼성SDI의 배터리가 장착됐다. 특히 LG화학의 경우 55.6%의 화재 발생 빈도를 보여, 점유율에 비해 20%p 이상 격차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 총 15건의 화재 중 앞선 14건은 2017년 2~4분기 중국 남경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장착된 ESS에서 발생했다. LG 측은 화재 원인과는 별개로 해당 공장의 초도 물량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이 기간에 생산된 배터리의 최대 충전률(SOC)을 90%에서 70%로 낮춰서 가동을 이어왔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경남 하동의 경우 최초로 국내(충북 청주시 LG화학 오창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들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하동 ESS 화재가 더 큰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는 잇따른 화재로 국내 ESS 생태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추가적인 대책을 발표한 직후 발생한 화재사고였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ESS 특수 소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대기업의 책무’라며 기존 삼성SDI 배터리가 장착된 ESS에 무상으로 이 시스템을 설치키로 했다. 삼성 측이 부담하는 금액만 최고 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곧이어 LG화학도 추가적인 화재 원인 규명과 화재 방지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후 단 1주일 만에 하동 ESS 화재가 발생했다.

업계는 의구심과 우려를 동시에 제기하는 모습이다. 화재의 원인으로 배터리가 지목되지 않았음에도 이같이 주목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를 보임과 동시에, 왜 유독 국내에서만 화재가 발생하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6월 정부는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 보호 시스템 미흡 등을 복합적으로 들었다. 국내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기간에 해외에서 보고된 ESS 화재도 전무한 실정이다.

국감에서의 주문과 주요 업체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추가 화재 원인 규명 작업이 연말까지 진행될 계획이지만, ESS 화재를 두고 업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다. 단기간 내 상당량의 ESS가 설치되는 과정에서 날림으로 설비가 이뤄지지 않았겠느냐는 의견과, 수익 극대화를 위해 발전량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는 풍토가 문제가 됐을 것이란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ESS가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이 한국이다. 2016년 274개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기준 1490개로 급증했다. 정부가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친환경 발전장치와 더불어 ESS 설치를 장려했다. 실제 이 과정에서 일부 무분별한 업체들이 난립했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심산으로 가동을 고조시키는 사례 역시 빈번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화재 원인 규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하는 배경에는 논란에 휘말린 업체들이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 아래 현재까지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미국·유럽·호주 등의 시장 개척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일련의 화재로 인해 경쟁국에서의 이미지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은 2025년까지 설치용량 기준 연평균 40%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다. 이에 따라 2017년 24억2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였던 시장 규모도 2025년 198억9000만 달러(약 23조8000억원)로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한국·유럽·일본·호주 등에서 가파른 성장이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과 독일 등을 중심으로 가정용 ESS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거대 기업이 버티고 있어 엄두도 못 내던 해외 ESS업체들이 한국 시장 진입을 고려 중인 가운데, 해외 시장에서도 화재사고를 들먹이며 우리 업체들을 압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원인 규명 없이 연속적으로 화재사고를 맞게 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이고 중소 부품업체들 및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대출까지 받아가며 ESS를 설치한 투자자들에까지 방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함과 동시에 이번 사고를 대하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 하자가 있더라도 기존 ESS에서의 화재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신규 제품에는 필수적으로 화재 방지 시스템이 장착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또한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 이후에도 각 책임 주체들이 제대로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미비사항 보완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등에 대해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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