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말·차량 소유권 판단이 ‘관건’

법원 깃발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이다인
법원 깃발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이다인

뇌물공여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돼 29일 상고심 선고를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적 쟁점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 정유라씨가 탄 마필과 차량의 소유권 등 2가지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받았는데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 여부 및 승마지원과 관련된 뇌물액수가 양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검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204억,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 승마지원 213억 등 총 433억원의 뇌물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제3자 뇌물수수죄에 대응하는 뇌물공여죄(영재센터, 재단지원 관련)와 뇌물수수죄에 대응하는 뇌물공여죄(승마지원 관련)로 나뉜다. 다시 승마지원은 용역대금, 말(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차량(선수단차량, 마필운송차량)으로 구별된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 ‘안종범 수첩’ 증거가치, 부정한 청탁 존재 여부에 영향

안종범 수첩은 제3자 뇌물수수 혐의인 영재센터와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액과 관련성이 크다.

먼저 제3자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를 선행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1심은 부정한 청탁의 존재에 대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봤다. 반면 2심은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부정한 청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인정한 업무수첩의 증거 능력을 배척하며 생긴 일이다. 다수의 다른 ‘국정농단’ 재판에서 비슷한 종류의 업무수첩을 유죄 증거로 활용한 판단과 배치되는 결과였다.

2심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던 1심 판단을 뒤집고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했고, 이 부회장 등이 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건”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이로써 영재센터 지원 16억원(1심 유죄)과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204억 전체에 무죄가 선고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되는 뇌물 액수가 대폭 낮아졌다.

검찰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가치를 인정해 ‘부정한 청탁’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 수첩에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등 승계 관련 청탁 내용, 최순실 승마 관련 전달상황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며 “2심은 안종범의 증언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판례와 상식에 반하는 논리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이 안종범 수첩의 성격과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를 어떻게 볼지에 따라 이 부회장의 뇌물액수가 크게 변동되고, 이에 따라 형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착석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착석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승마지원’ 뇌물액 규모도 쟁점···말·차량 사용액, 50억 가중 처벌 기준 넘을까

최씨의 딸 정유라씨와 연관된 ‘승마지원’ 관련 뇌물액은 실형이 집행유예로 변경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72억원에 달하던 뇌물액수가 36억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앞서 2심은 이 부회장이 최씨 소유의 ‘코어스포츠’에 보낸 용역대금 36억3000여만원을 뇌물로 인정했지만, 정씨가 탄 마필과 차량, 보험료 등에 대해선 소유권이 ‘삼성전자’에 있기 때문에 나머지 혐의는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최순실로부터 ‘내 것처럼 타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정유라씨의 증언과 배치되는 판단이었다.

특히 2심은 마필과 차량의 ‘사용이익’을 뇌물로 보면서도 이 사용이익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3000만원에 그쳤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가중 처벌 기준인 50억원도 넘지 않게 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사건에서는 72억원이 유죄로 인정된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의 사건에서만 36억원만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2심 판단을 두고 가중처벌 기준인 50억원을 넘기지 않고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맞춤형 판결’이라는 비판이 상당했다.

검찰 한 관계자는 “백번 양보해 (뇌물공여액) 36억원만으로도 절대 집행유예가 나올 사건이 아니다”며 “장시호가 2년 실형, 차은택이 21억원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장시호·차은택보다 이재용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책임이 더 가벼운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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