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경영권승계라는 ‘부정한 청탁’ 인정···정유라 말 3필도 뇌물로 판단
1심 인정한 유죄 부분과 대법 판단 같아···“2심, 감형 위해 자의적 판단” 비판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입구에 피고인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배너가 세워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입구에 피고인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배너가 세워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낸 뚜렷한 2심의 잘못은 경영권승계라는 ‘부정한 청탁’의 존재,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위해 제공받은 말 3필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 등 두 가지로 축약된다. 이재용 2심의 오류는 상당 부분 1심에서 증거로 인정됐거나 유죄로 판단된 내용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조희대)는 29일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 ‘안종범 수첩’으로 경영권승계라는 ‘부정한 청탁’ 인정돼

이 사건 핵심쟁점 중 하나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 여부와 그에 기초한 부정한청탁 여부의 사실인정이었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제3자 뇌물수수(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204억)는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를 선행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1심은 부정한 청탁의 존재에 대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봤는데, 2심은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부정한 청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인정한 업무수첩의 증거 능력을 배척하며 생긴 일이었다. 2심은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이 입증해야 할 범죄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할 주요 증거 하나를 날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전문법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합은 “부정청탁의 대상과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과 대가성이 특정되는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원심이 부정 청탁 대상이 명확히 정의되고 뚜렷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본 것은 법리에 배치된다”라고 했다. 또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춰보면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영재센터 지원 16억원은 1심과 같이 유죄 취지로 판단됐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심이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는 결정적 스모킹 건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것”이라며 “(2심이)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마필 3마리도 뇌물로 인정···뇌물액 ‘72억→36억→72억’ 판단

이 사건 두 번째 핵심 쟁점은 뇌물죄에서 유죄로 인정된 부분의 액수다.

정유라씨와 연관된 ‘승마지원’ 관련 뇌물액 인정액은 72억원(1심)에서 36억원(2심)으로 줄었는데, 이 부회장이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선고형이 변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심은 이 부회장이 최씨 소유의 ‘코어스포츠’에 보낸 용역대금 36억3000여만원을 뇌물로 인정하면서도, 정씨가 탄 마필과 차량, 보험료 등에 대해선 소유권이 ‘삼성전자’에 있기 때문에 나머지 혐의는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 전합은 말의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었기 때문에 마필 자체를 뇌물로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바로잡았다.

전합은 “최씨가 말 소유권을 갖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이 부회장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양 측 사이에 말을 반환할 필요가 없고 실질적인 사용·처분 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면서 “최씨는 말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말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그 손해를 삼성전자에 물어줄 필요가 없었는데 이는 말들에 관해 실질적인 사용·처분권한이 최씨에게 있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전합은 또 “이 부회장 등은 최씨에게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을 뇌물로 제공했고 최씨는 위 말들을 뇌물로 받았다고 봐야 한다”라며 “2심은 말의 소유권이 삼성전자에 있고, 최씨는 말들에 관한 액수 미상의 사용이익만 얻었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고 일반 상식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합은 말이 뇌물이 아니고, 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한 부정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무죄로 판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부분, 범죄수익은닉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부분에도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라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했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단은 2심이 틀렸고 1심이 대부분 맞았다는 의미”라며 “2심은 뇌물죄에서 가중처벌 기준이 되는 50억원을 넘기지 않기 위해 자의적으로 유죄부분을 판단한 오류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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