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기업들 일본 정부에 서한 보내 우려 표시···양국 갈등 정치문제 아닌 경제문제로 부각될수록 타 국가들 개입 불가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한 직원이 미소를 보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한 직원이 미소를 보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는 명분이지만 경제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약소국들이 강대국 눈치를 보는 것은 군대를 몰고 쳐들어올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심기를 건드렸다가 경제적 손실이 극심해 질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관세를 많이 매길까봐, 중국이 수출을 막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번 한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일각에서 일본이 삼성전자 때문에 수출규제 철회를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삼성전자가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예상되는 나비효과 때문이다. 일본기업은 물론, 특히 미국 유수 기업들까지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같은 전망은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등 6개 단체가 한국과 일본정부에 서한을 보내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쉽게 말하면 반도체 업계는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공장라인처럼 밸류체인을 이루고 있는데 일본정부 수출규제로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단체엔 인텔, 마이크론, IBM 등 미국 유수 IT(정보기술)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아베 정부로선 이들 기업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자칫 아베 정부가 미국 기업들의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굴지의 IT기업들이 많은 미국”이라고 전했다.

TV나 스마트폰 같은 소비재는 특정 기업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기업 제품을 써도 큰 불편이 없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일본 맥주를 못 먹게 된다면 한국맥주나 다른 국가 맥주를 마셔도 된다. 허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핵심 부품들은 다르다.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데이터센터를 짓는데 차질이 생긴다.

물론 반도체도 다른 회사 제품을 쓰면 되지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수준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품질도 경쟁사들과 비교하기 힘들어 대안을 찾기 힘들다. 삼성전자는 이 와중에도 5G 통신 시대에 맞춤형인 12Gb(기가비트) LPDDR5 모바일 D램을 세계최초로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성능 면에서도 세계 최고다.

결국 아베정권의 조치가 삼성전자의 부품 경쟁력에 더해져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됐고, 미국 기업들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일 갈등이 정치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로 부각이 되는 것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충고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일 갈등이 정치적 갈등이라고 하면 국제 사회는 끼어들려하지 않는다”며 “경제문제로 자꾸 부각해야 자신들에게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고 개입을 하게 되고, 이것은 우리에게 유리하고 일본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자유무역을 헤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해당 갈등을 경제가 아닌 정치문제로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 문제에 대해 “양국이 원하면 개입하겠다”는 식으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본의 조치로 피해가 우려되는 미국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한일 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로선 이 같은 상황을 전략적으로 더욱 부각할 필요가 있는데, 그 때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삼성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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