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트럼프 대통령 투자 독려 시점과 겹쳐···"미국 생산 시 일본 규제 피할 수 있을 것" 전망

지난 5월 22일 서울 광화문 한 호텔에서 만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삼성전자
지난 5월 22일 서울 광화문 한 호텔에서 만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삼성전자

지금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다시피 하고 있는 한일 무역전쟁도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 이 무역전쟁이 끝나면 국내 산업계에도 여러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삼성전자가 미국에 생산기지를 지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주목된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 관련 이슈가 끝나면 여러 정세를 고려해 삼성전자가 미국에 생산기지를 짓는 것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지금 현 시점에 이 같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은 간단하다.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할 것이라면 지금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우선 업계에선 수출규제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일본 리스크를 두 번 반복해서 부담할 순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이번 아베 정부의 행동이 일본 기업들과 삼성전자 간의 신뢰에 금이 가게 했다고 보고 있다. 오랜 기간 돈독하게 이어온 관계를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한 반도체업계 인사는 “일본 불화수소 제품을 한국에서 쓴 것은 품질이 좋고, 싸고, 그동안 써오면서 신뢰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라며 “어쨌든 이번 일로 다시 한 번 관계를 돌아보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이 생기게 됐다”고 전했다.

때문에 향후 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여러 대책들이 논의되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행이다.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게 되면 일본이 한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 수출규제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을 멈추게 하고 메모리 공급을 어렵게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국 보호 정책을 추구하는 트럼프 정부가 자국에 투자를 하는 기업은 확실하게 밀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때 투자를 하면 세제 감면 등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특히 더 많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방한 때 기업인들을 만나 미국에서 투자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미 삼성전자도 신동빈 롯데 회장에 대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환대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라며 “일본에 또 당하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미국행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1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건설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이를 칭송하고 신동빈 회장을 따로 만나기도 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독려, 여기에 일본 수출규제가 터지면서 삼성전자로선 미국에 투자를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지고, 명분도 생기게 됐다.

삼성전자는 선대인 이건희 회장 때부터 미국과 인연이 깊다. 1996년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 텍사스 주지사를 지내던 시절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에 첫 해외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당시 주지사였던 아들 부시 대통령은 준공식에 직접 참석하며 삼성전자의 공장 준공을 환영했다. 최근에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30분간 단독 면담을 하기도 했다.

한일 무역전쟁이 끝난 후 삼성전자가 미국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게 된다면 우리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자동화가 많이 이뤄져서 일자리 창출은 과거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해도, 세금 등 기타 경제효과를 생각하면 삼성전자 공장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시나리오는 우리로선 매우 아쉬운 일”이라며 “결국 자연스럽게 국내에 남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우리 입장에선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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