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임시국회서 ‘외주화 방지’ 정부 개정안 처리 예정…노동계 “정부안으론 부족” 지적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과 국화꽃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회가 12월 임시국회에서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높인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장의 노동자들과 일부 정치권은 정부 개정안 내용으로는 ‘죽음의 외주화’를 실효성 있게 막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공과 민간기업 모두 원청 사업주 책임에 따른 처벌의 하한형을 두고, 관련 책임이 있는 정부 공무원도 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급 금지 대상을 위험한 업무 전반으로 확대해야 하고 무엇보다 관련 대책이나 법을 만들 때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19일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1월 정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1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정부 개정안을 처리하기에 앞서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고용노동소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공청회에 여야 3당이 초청하는 전문가, 노동계·경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우선 정부안을 보면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정부안은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범위를 원청 사업장에서 원청이 지정하거나 제공한 장소로 확대했다.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청 사업주에 대해 현행 7년 이하 징역 가능에서 10년 이하로 높였다. 하청 사업주와 같은 수준으로 높였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 상한은 현행 1년 이하 징역에서 하청 사업주와 같은 5년 이하로 높였다.

정부안은 직업병 위험이 큰 도금 작업, 수은·납·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작업은 원칙적으로 외주화를 금지했다. 정부안에는 김용균 씨가 했던 전기 관련 업은 외주화 금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대신 당정은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관리제도 대상에 전기 업종을 추가하기로 했다. 

 

지난 1월부터 시행중인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관리제도는 원청의 산재 지표에 원청 작업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의 산재도 포함하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원청의 산재보험료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정부안 내용만으로는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 “공공·민간 원청 처벌 하한제 필요…도급 금지 대상 확대해야”

정부 개정안은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거나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할 경우 원청 사업주의 처벌 수준을 높였다. 그러나 하한형을 두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사고 시 처벌 수준의 상한선을 높이는 것은 효력이 없다.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될 수 있다”며 “처벌의 하한형을 두는 것이 원청 사업주 책임 강화의 실효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안전보건 책임 관리는 모두 원청 사업주가 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시 처벌 수준을 높여도 실효성이 부족하다. 정부안은 원청 사업주의 안전조치가 미비할 경우에만 책임을 묻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안전조치를 한 경우에는 처벌 수위를 낮추되, 안전조치를 했든 하지 않았든 안전보건 책임 관리는 원청사업주가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주화에 따른 재해 사고 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민간기업에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내 대기업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업무 도중 다치거나 죽는 일이 빈번하다. 대기업도 공기업처럼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외주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이산화탄소 유출로 협력업체 직원 3명이 죽거나 다쳤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자가 지하수로 청소 작업을 하다가 죽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재해 사고시 원청 사업주에게 포괄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다”며 “민간기업과 공기업 모두에 처벌 하한형을 두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지난 지난해 11월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이 법에 따른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며, 해당 법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을 방치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는 또한 공공부문의 경우 모든 업무를 도급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남동발전 하청 노동자는 “공공부문은 공공성과 공익성이 높다. 모든 업무에서 도급을 금지하고 직접 고용해 정규직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정부안은 도급 금지 대상 범위가 좁다. 고 김용균씨가 일했던 전기 업무 등 위험하고 유해한 일 모두 도급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 “관련 공무원 처벌 강화 필요​법 만들 때 현장 노동자 목소리 들어야” 


죽음의 외주화를 실효성 있게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재해사고 시 원청 사업주 뿐 아니라 이와 관련이 있는 정부 공무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재해 사고 시 기업뿐 아니라 기업의 업무와 관련된 공무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재해사고에는 공무원의 의식적 직무 방임이 수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감독 및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고의적으로 직무를 유기해 그 결과로 재해사고가 발생해도 현행법 해석으로 형사책임을 물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해양수산부의 공무원들은 정직·감봉 등의 처분만 받았다’고 했다.

이에 이 특별법안은 ‘법령상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감독의무 또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무를 유기해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국회와 정부가 관련 법안을 재개정할 때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혜진 활동가는 “국회와 정부는 재해 사고를 막기위해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모습이 없었다. 21일 공청회에서도 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항상 공청회 때마다 경총 등의 원청 책임 완화 주장에 따라 실효성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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