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외주화, ‘임금 양극화’에 ‘노동자 안전’까지 위협…“직고용 예산 늘려 공공부문 선도, 민간기업 확대 절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사고 이후 위험 업무 외주화와 비정규직 노동자 저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상시·지속 업무는 원청이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위험 업무 외주화에 따른 산재 사고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부문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직고용 예산을 늘려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기업도 단계적으로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촉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후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과 외주화를 급속히 늘렸다.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회 양극화의 주 원인이었다.

2018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61만4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2004만5000명 가운데 33.0%를 차지했다. 2012년 8월 33.2% 후 6년 만에 가장 높았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절반에 그쳤다. 2018년 6~8월 월평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54.6%였다.

외주화와 비정규직 확대는 임금 양극화 뿐 아니라 하청 노동자 산재사고도 이어지게 만들었다. 외주화에 따른 경쟁 입찰 과정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재 사고가 일어날 경우 원청은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길 수 있기도 했다.

김용균씨 사고도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 서부발전이 2015년 경쟁 입찰 시스템(외주화)을 도입하면서 기존의 2인 1조 시스템이 없어졌다. 발전 정비 부문의 하청 노동자들은 인력을 늘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홀로 업무를 했고 사고가 난 그 순간에도 김씨를 구할 사람이 곁에 없었다. 발전사들은 하청 노동자 사고가 잇따랐지만 오히려 무재해 인증을 받고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김씨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는 3년째 무재해 인증을 받았다.

이에 현장 노동자들은 상시·지속 업무는 원청이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위험 업무 외주화에 따른 산재 사고와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부발전 하청 노동자인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직접 고용 대상이 되면 우리들이 요구했던 인력 증원과 작업환경 개선이 더 빨라질 것”이라며 “그러면 위험한 업무로 노동자가 죽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 조건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동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기관을 평가할 때 수익성보다 노동자 안전성, 하청 노동자 사용 감소 정도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공공성을 가진 공적인 업무가 외주화로 민간에 넘어가면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력이 줄고 업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공공기관 평가 지표를 노동자 안전성과 고용 안정 중심으로 보도록 개선해야한다”고 했다.

◇ “자회사 방식, 원청 책임 회피·저임금 구조 하청업체와 같아”

여러 공공기관들은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회사를 세워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이 원청 책임 회피·저임금 구조가 기존 하청업체와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공공부문 정규직화 1단계 전환 대상 중 하나인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34개소의 10%인 33개소에서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었다. 그 규모는 3만2514명이었다. 중앙부처 산하 전체 공공기관의 파견·용역 근로자는 5만9470명이다. 54.7%가 자회사 형태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자회사 방식은 저임금 구조가 여전하도록 했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2017년 말 자회사 여수광양항만관리(주)를 세워 특수경비용역 비정규직 직원 1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영훈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여수광양항만관리지부장은 “현재 우리들은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 보다 255원 많은 7786원을 받고 있다. 연장 근로와 심야수당을 제외하면 월 180만원에 불과하다”며 “자회사 전환 후 자회사의 관리자가 늘어나면서 예산이 낭비됐다. 자회사 사장 1명과 관리직 5명을 채용해 연간 2~3억원 이상 비용이 발생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비용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와 매년 위탁용역 계약을 맺는 우체국시설관리단 현장 노동자 2500여명도 최저임금에 머물러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은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 계획에서 자회사로 분류돼 직접고용 대상에서 빠졌다. 박정석 공공운수노조 우체국시설관리단지부장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청사경비에 지급한 금액의 60% 정도만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는 중간 단계인 우체국시설관리단에서 각종 일반관리비, 이윤, 부가가치세로 빠진다”며 “이에 노동자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고 말했다.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은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기도 하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자회사 1년 예산을 책정하지만 자회사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없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원청 책임이 없다.

공공기관이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근거는 지난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이었다. 가이드라인은 ‘파견·용역은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공공부문 자회사는 원청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재취업 창구로도 이용됐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2017년 8월 기준 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하청업체 팀장급 이상으로 이직한 이들은 100명이었다. 고 김용균씨가 몸 담았던 한국발전기술에는 원청인 서부발전과 한수원 그리고 한전KPS 출신이 13명 있었다. 일진파워(8명), 원플랜트(6명), 에이스기전(19명), 금화PCS(13명), 수산인더스트리(28명), 한국플랜트서비스(14명) 모두 마찬가지였다.

현재 우체국시설관리단 본사 이사장 등 고위직에 우정사업본부 출신 14명이 재취업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자회사 방식은 원청의 책임 회피, 저임금 구조가 기존 하청업체와 같다”며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면 정부와 원청 기업을 상대로 임금 교섭을 할 수 있다. 사고 시 원청 책임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원청 기업들은 하청 노동자 직고용에 소극적이다. 김용균씨의 원청인 서부발전 관계자는 “민간 위탁 부분의 직접 고용 여부는 회사 내에서 정리가 안됐다”며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이나 한전산업개발 등은 민간회사인데 노동자들을 직고용 했을 때 이들과의 관계 문제도 있다. 하청업체 가운데 상장사도 있고 외국인 투자자도 있다. 직고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청 노동자들을 직고용 하면 하청업체들 일거리가 사라져 문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발전 5사 하청업체 가운데 금화PSC, 한전산업개발, 일진파워 등은 상장사다.

이에 김 활동가는 “현장 노동자들은 원청이 직고용하기에 문제가 없다. 다만 하청업체의 소수 임원이나 관리급 직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하청 노동자들을 위험한 업무에 저임금으로 내모는 외주화 구조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하청 업체는 원청 임직원의 일자리 창출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부작용을 줄이도록 단계적 방안을 찾아 직고용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직고용 예산 늘려야…민간기업 직고용 지원책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위해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직고용 시 관리직과 현장 업무직 간의 임극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또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상시, 지속적 업무에도 허점을 통해 제외되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상시, 지속적 업무가 연중 9개월 이상 지속되고 향후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를 뜻한다고 2017년 가이드라인을 통해 밝혔다.

전문가들은 공공부문 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상시, 지속적 업무에 대해 단계적으로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민간 기업도 외주화를 통해 임금 차별과 원청의 책임 회피가 만연하다. 한국과 일본은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제조업의 경우 하청을 주는 곳이 거의 없다”며 “지불 능력이 있는 대기업이 외주화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외주화에 따른 비정규직 방식으로 초과 이윤을 얻었다.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일시에 모든 사업장에서 직고용 정규직화 할 수 는 없다. 단계적으로 조치하고 사업장과 업종 특성을 고려해서 직고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간 기업은 현업 업무를 중시해야 현장 숙련 인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하청 노동자들을 자회사 방식이 아닌 직고용하고 임금 차이도 줄였을 경우 세제 혜택 등 지원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 관계자는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비용 증가 등에서 부담이 된다”며 “직접 고용한다고 안전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성을 가진 하청업체가 하는 게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성 중심의 하도급이 아닌 인력 하도급의 경우 상시, 지속적 업무일 때 업계 특성을 반영해 직영화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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