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이야기

 

“가야금만 타던 네가 이제 와서 어떻게 다른 일을 해?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될 걸.”

가야금만 8년간 연주하던 내가 다른 일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들은 말이다. “하나를 잘 해야 다른 것도 잘하지”, “하나만 파고들어야 나중에 대접 받고 산다” 등 조언도 뒤를 이었다. 인생 선배들이 건넨 현실적인 조언들이었다.  

불안했지만 의구심도 들었다. 하나를 잘 해야 다른 걸 잘 한다는 편견은 어디서 나왔나. 음악만 하던 사람이 다른 걸 못할 건 뭔가. 무엇보다 8년 동안 가야금을 연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대로 가야금에 매일 수만은 없었다. 누구도 내게 확신을 줄 수 없었다. 조언만 듣지 말고 하고 싶은 걸 직접 해보기로 작정한 건 그 때문이었다. 진로 검사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학기 휴학계를 냈다.

드로잉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림 그릴 때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나 선을 긋는 느낌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생각보다 지루했다. 4B 연필을 도화지에 긁어대는 소리는 금새 희미해졌다. 텅 빈 도화지 앞에선 가야금을 탈 때만큼 막막했다. 하지만 기술이 쌓일수록 드로잉은 갈수록 재밌어졌다. 드로잉이 손에 익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콘텐츠 제작 분야로 눈을 넓혔다. 콘텐츠 제작에도 드로잉을 십분 활용했다. 태블릿PC를 사고 연애툰도 그렸다. 포토샵과 영상 편집 등 콘텐츠에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짬짬이 배웠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콘텐츠에 들어갈 이미지 제작을 맡았다. 이미지가 없으면 전달력이 떨어지는 콘텐츠였다. 글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그리니 반응이 좋았다. 한 두 개씩 콘텐츠가 쌓이니 몇몇 회사에서 콘텐츠 제작을 부탁했다. 작업에 대한 대가도 받았다. 인생 선배들이 현실이라고 했던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다.

지금은 어떤 형태이건 간에 콘텐츠 만들기 자체를 즐기고 있다.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가야금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중이다.

그럼 이제 해피엔딩이냐고? 절대 아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다 해본 뒤 쌓은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싶다. 어쩌면 뜻밖의 계기로 가야금을 연주하고 싶은 이유를 찾을 지 모른다. 드로잉, 콘텐츠 제작, 가야금 모두 내가 만들 미래의 한 부분이다. 이제 나는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

발로 뛴 경험은 나의 막연한 상상과 선배의 조언보다 훨씬 더 좋은 나침반이 됐다. 직접 해봐야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의 실제는 어떤지 알 수 있다. 나침반 바늘이 흔들려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뛰어들라고 권하고 싶다. 그럼 바늘은 더 예리하게 가야할 곳을 가리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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