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
10월 기온 치곤 쌀쌀했다. 한국은 더운 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북한을 눈앞에 둔 북중 접경지대에선 찬 공기가 옷 속을 파고들었다. 압록강변을 따라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북한 혜산시 건너편 중국 땅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곳에 통일 관련 연수차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꽂고 강 건너로 시선을 옮겼다. 강폭은 50m도 안돼 보였다. 강보다는 하천에 가까운 압록강변에서 북한 아낙네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빨랫감을 들고 하천 주변 바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경쾌한 빨래방망이가 옷에 닿는 소리가 몰래 국경선을 넘어 내 귀에 들렸다. 아낙네들 이야기는 들릴 것 같으면서도 들리지 않았다.
일행 중 붙임성 좋은 친구가 손을 흔들며 하천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중국어 홍수를 제치고 한국어가 저편까지 울렸다. 아낙네들은 바라만 볼 뿐 손은 흔들어주지 않았다. 아낙들 눈은 재빨리 다시 빨래를 향했다.
그때 내게 낯선 중국어가 다가왔다. 중국 상인은 우리에게 망원경을 권했다. 더 잘 보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했다. 가이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흥정에 나섰다. 우리는 시선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
아낙네들 뒷편에 있는 허름한 초소에 있는 보초 2명이 보였다. 두 남자는 어깨에 총을 메고 망원경으로 우릴 쳐다봤다. 그들과 우리는 각자의 망원경을 통해 서로를 응시했다. 잠시 뒤 두 남자와 우리의 시선은 하천으로, 그리고 다시 아낙네들과 뛰노는 아이들로 옮겨졌다. 아낙네들은 끝내 눈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아낙네들이 눈을 들 수 없고 우리의 인사에 답할 수 없던 것은 본디 두 남자의 시선 아니 감시 때문일 것이다. 언제든지 그저 ‘남한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는 이유로 아낙네들에게 벌을 줄 수 있는 두 남자와 그들의 감시에 아낙네들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접경지역 건너편 사람들을 쳐다보고 인사하면 처벌을 받는다. 시기적으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가볍게는 반성문 20쪽 작성에서부터 무겁게는 교도소 3개월 감금 처분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감시시스템이 민법과 형법에 규정돼 있다. 요즘은 손 흔들어주는 것 정도는 봐준다지만 원칙은 그렇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가 떠올랐다. 이웃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밀고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계.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빨래터에서는 모두가 감시받는 주인공이었다. 이렇듯 자유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시선의 자유는 평등하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너가지 못한 것은 이쪽과 저쪽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아낙네들 시선도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다. 망원경을 가진 자들은 시선이나마 강을 건넜다. 이쪽에선 값을 지불한 사람만 망원경을 들었고 저쪽에선 총을 멘 사람만 망원경을 들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아낙네들과 두 사내, 그리고 우리는 같으면서도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