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업황 개선일뿐 글로벌 수요는 늘지 않아…M&A 통한 덩치 키우기 외면 말아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9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아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산업이 진화하는 거라면 구조조정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철강도 마찬가지에요. 만들어놓으면 파는 시대는 지났죠. 최근에야 가격인상 여유가 생겼다지만 이대로라면 언제든 공급과잉이 생길 수 있어요. 지금 철강업체들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어요.”

 

한 철강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해 9, 정부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BCG)의 철강산업 컨설팅에 기반한 철강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한다. 강화방안에는 고부가제품 개발연구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 생산력 단계적 감축 철강 수출품목 다변화 등을 담았다. 철강업체들도 처음엔 자발적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서 철강 설비를 감축했다. 공급과잉이 해소되면서 철강업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축안을 다시 집어넣었다.

 

철강 전문가들은 수요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공급이 일시적으로 축소된 것이라고 입을 모아 경고한다. 비관세장벽을 높여가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받겠다는 인도. 적극적 M&A를 통한 대형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가는 일본과 유럽. 언제든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중국. 자국 내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는 미국. 그리고 철강 수입에 아무런 장벽이 없는 한국. 글로벌 철강 환경은 여전히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다.

 

철의 시대는 저물고 있어적극적 대형화로 가격경쟁력 확보해야

 

지난해 9월 초, 수출입은행에서 흥미로운 보고서가 발표된다.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는 글로벌 철강환경에 맞서 국내 철강업체도 대형화가 필요하단 내용이었다. 특히 조강생산량 1, 2위를 다투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합병론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강정화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설비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해서 M&A를 제시했다4일 설명했다. 그는 중국발 공급과잉 해소는 말 그대로 공급 축소지 수요 창출이 아니다라며 언제든 공급과잉이 벌어질 가능성은 존재 한다고 덧붙였다.

 

철강산업은 진입비용이 높다. 하지만 한번 지어 놓으면 계속해서 가동이 가능한 장치산업이다. 원자재 조달 비용, 철강재 가격 주도권 확보에 있어 대형사가 유리한 이유다. 강 연구원은 M&A가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동종 업계를 통합하면 생산 규모가 자연스럽게 줄 것이란 계산에서다.

 

세계 철강기업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 2015년 기준 세계 철강 생산 1위 기업은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로 연 생산능력 9710만톤을 자랑한다.

 

2위는 중국의 바오우(寶武) 철강그룹으로 연산 6070만톤이다. 3위는 일본 신일철주금(Nippon Steel & Sumitomo Metal CorporationNSSMC)으로 2015년 기준 조강 생산량 4637만톤이다.

 

이들 3개 기업은 모두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된 회사다. 아르셀로미탈은 룩셈부르크 소재 다국적 철강기업 아르셀로를 인도 철강업체 미탈(Mittal Steel)이 지난 2006년 인수하면서 만들어졌다. 아르셀로도 스페인 철강기업 아세랄리아(Arceralia)와 룩셈부르크 철강기업 아베드(Arbed), 프랑스 철강기업 유지노(Usinor)2001년 합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기업이다.

 

2위 바오우 철강그룹은 세계 5위 철강업체인 바오산(寶山)철강그룹과 11위 우한(武漢)철강이 합쳐 탄생했다. NSSMC도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 금속공업이 2012년 합쳐지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합병을 통해 과잉설비를 폐쇄하고 가격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해 나갔다.

 

연 조강생산량 4100만톤인 포스코와 2000만톤인 현대제철이 합병하면 조강생산량 6100만톤에 이르는 세계3위권 철강그룹이 탄생한다. 강 연구원은 새로운 제품 생산이 어렵다면 대형화를 통해 생산 단가라도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철이 주도할 수 없다라며 가동률이 낮은 설비는 정리하고 새로운 제품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형화도 효과 의문후판설비 감축하고 고부가제품 생산 나서야

 

지난해 말부터 철강 업황은 회복세다. 중국발 구조조정 덕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조강 생산량을​ 1~15000만톤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4500만톤 감축에 성공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을 이유로 원료탄 생산도 줄여나갔다. 덕분에 국내 철강업계엔 가격 인상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회복세가 성장세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지금 가격 인상은 14년 수준으로 회복하는 단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최근 가격 인상은 건설업계 호황이 견인했다후판에서 본 손해를 철근, 형강 등 건설자재로 메우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후판은 두께 6이상 두꺼운 철판으로 주로 선박에 쓰인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후판 생산능력은 1279만톤, 가동률은 78%. 조선업계가 본격적으로 수주절벽에 다다른 올해부터는 가동률이 더 떨어진다. 그는 후판에서 새로운 수요를 찾지 못한다면 설비 폐쇄나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M&A를 통한 대형화에도 부정적이다. 그는 세계 162000만톤 조강 생산량 중 중국이 절반을 차지한다대형화로 범용제품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다 고부가제품을 확대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강 연구원처럼 4차산업혁명을 들며 업계가 나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야한다고 말한다.

 

다만 강관에서는 M&A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2015년 기준 국내 강관생산능력은 1082만톤인데 가동률은 46%에 불과하다. 그는 중소형 강관업체들은 동일한 제품을 동일한 품질로 생산하고 있다제살 깎아 먹기식 과당경쟁에선 M&A를 통해 경쟁을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철강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설비 감축보단 균형 잡힌 운동장 만들어야

 

현재 한국에 수입되는 철강제품은 관세가 제로수준이다. 한 국책기관 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 외국산 철강제품은 그 배로 수입된다고 지적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중국산 철강제품 점유율이 높다. 지난해 10월 최문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이 펴낸 한국 철강산업의 국제 경쟁력 현황 및 제고 방안에 따르면 중국산 봉강 제품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35%. 형강은 24%, 후판은 14%.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비관세장벽을 쌓자고 말한다. 품질과 신뢰성이 확보된 우수한 제품으로 겨룰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자는 의미다. 민 교수는 한국은 세계 3위 수준 철강 수입국이다설비를 감축하면 그 빈틈은 개발도상국산 철강제품이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기조가 득세하면서 각국은 기술장벽환경기준 등으로 비관세장벽을 쌓고 있다. 기술장벽은 일정 기술 수준 이하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다. 환경기준강화는 친환경소재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 시판을 금지하는 환경규제다. 민 교수는 한국도 기술장벽과 환경기준을 마련해 저품질신뢰성이 제각각인 수입산 철강제품을 막자고 주장한다.

 

철강제품은 선박, 차량, 건설에 들어가는 안전소재다. 그만큼 높은 신뢰도와 고품질이 필요한 제품이다. 민 교수는 한국 철강시장에서는 저품질 수입산 철강제품이 가격을 무기로 고품질 국산 철강제품을 밀어내는 양화구축(良貨驅逐)이 벌어지고 있다정부가 말하는 양적 감축은 악화를 몰아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 교수는 보호무역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국내 철강산업이 결코 유치산업 수준이 아니란 의미다. 민 교수는 공정한 운동장에서도 지는 한국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공정한 시장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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