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삼원계 단가 불리, 가격전략·기술력으로 돌파
LG엔솔, 2곳 136MW 확보···점유율 24% 수준
SK온은 첫 도전서 탈락···양산 체계 미완이 발목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삼성SDI가 정부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 사실상 시장 주도권을 가져왔다. 전력거래소가 주관한 이번 사업에서 삼성SDI는 전체 공급 물량의 80% 가까이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술력과 가격 전략을 동시에 갖춘 결과라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은 2곳을 수주해 체면치레에 그쳤고, SK온은 첫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24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날 전력거래소는 각 컨소시엄에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를 개별 통보했다. 이번 사업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된 장주기 ESS 구축 계획의 첫 물량으로, 총 565MW 규모(육지 525MW, 제주 40MW)다. 

지역은 전국 단위로 구성됐지만, 사업지는 사실상 전남을 중심으로 한 호남권에 집중됐다. 이번 입찰에는 총 8개 컨소시엄이 참여, 전국 8개 지역(고흥, 광양, 진도, 무안, 영광, 안좌, 제주, 홍농)이 선정됐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현재는 일주일간 이의신청 접수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이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결과는 최종 확정된다”고 했다.

삼성SDI는 전체 8개 사업지 중 무려 6곳에서 배터리 공급사로 낙점됐다. 진도(48MW), 고흥(96MW), 무안(80MW), 영광(80MW), 안좌(96MW), 읍동(29MW) 등이다. 총 수주 용량은 465MW/2574MWh, 전체 565MW의 약 80%에 달한다. 사실상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로 올라선 셈이다.

삼성SDI의 '삼성배터리박스(SBB) 1.5'. / 사진=삼성SDI
삼성SDI의 '삼성배터리박스(SBB) 1.5'. / 사진=삼성SDI

◇ NCA 불리함 뚫었다…삼성SDI, 6곳 465MW 공급 유력

삼성SDI가 내세운 배터리는 고에너지밀도 특성을 가진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삼원계 제품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NCA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LFP(리튬·인산·철(LFP) 제품에 비해 입찰에서 불리한 구조지만, 이번엔 달랐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SDI는 입찰 막판 가격을 파격적으로 인하하며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결과가 수익성보다 시장 점유율 확대에 방점을 찍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가 소재인 삼원계 배터리의 원가 구조를 고려할 때 가격 평가 비중이 60%에 달하는 평가 체제에선 채산성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ESS 업계 관계자는 “NCA로 가격 평가에서 이긴 것은 결국 삼성SDI가 상당한 수준의 저가 납품을 감수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단기 수익보다 트랙레코드 확보와 국내 ESS 시장 내 존재감 제고를 우선순위로 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술적 안정성도 보강됐다. SBB(Smart Battery Box) 및 EDI(직분사 소화 시스템) 등을 적용해 발열 우려를 줄였고, 국내 울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점도 산업기여도 평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LG에너지솔루션 ESS용 LFP 롱셀 배터리. /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ESS용 LFP 롱셀 배터리. / 사진=LG에너지솔루션

◇ LG엔솔, 체면치레 했지만 격차 뚜렷···SK온은 ‘0곳’

LG에너지솔루션은 광양(96MW)과 제주 표선(40MW) 지역에서 배터리를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 배터리 공급 용량은 136MW로 삼성SDI의 약 30% 수준에 그친다. LFP 기반 배터리로 가격경쟁력과 화재 안정성에서 장점을 인정받았지만, 전반적 수주 성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회사는 지난해 제주 ESS 사업을 사실상 석권했지만, 이번 입찰에서는 점유율 측면에서 삼성SDI와 뚜렷한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배터리 셀 생산지가 중국 난징이라는 점이 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산업·경제 기여도를 따지는 항목에서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한 삼성SDI에 비해 감점 요인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SK온은 이번 입찰에서 적용처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LFP 양산을 준비 중이지만, 서산 공장 등 생산기지가 아직 검증 단계에 머물러 있어 가격·공급 안정성 측면 모두에서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석희 체제’ 하에서 신설된 ESS 솔루션&딜리버리실의 데뷔전은 결국 ‘완패’로 끝났다.

정부는 이번 입찰을 시작으로 총 1.5GWh 규모의 장주기 ESS를 단계적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ESS 설치가 추진될 전망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향후 2·3차 입찰이 열릴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일정, 설치 용량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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