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는 가격 점수 편중…2차선 국산화·안전성 비중 확대
전력거래소 “1차 입찰서 국내 생산은 참고자료 수준”
비가격 지표 세분화 논의…공급망·안전성 반영 가능성
전기차 캐즘 속 ESS 장기계약, K배터리 안정적 매출원 부상

삼성SDI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북미 최대 에너지산업 전시회 'RE+(Renewable Energy Plus) 2025'에 참가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최적화된 차세대 배터리 제품 라인업을 전격 공개했다. / 사진=삼성SDI
삼성SDI는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북미 최대 에너지산업 전시회 'RE+(Renewable Energy Plus) 2025'에 참가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최적화된 차세대 배터리 제품 라인업을 전격 공개했다. / 사진=삼성SDI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정부가 주도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제2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이 내달 시작된다. 1차 입찰에서 가격 점수에 승부가 지나치게 좌우된 구조를 보완하고, 국산화와 안전성까지 반영하는 새로운 평가체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3사(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는 단순한 점유율 확보를 넘어 산업·공급망 기여도를 증명해야 하는 무대에 다시 오른 셈이다.

22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진행된 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은 삼성SDI의 압승으로 끝났다. 총 565MW 가운데 465MW(약 80%)를 따내며 사실상 시장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삼성SDI가 고가의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를 내세웠음에도 낙찰을 따낸 것은 가격 점수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단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면서 가격 평가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광양과 제주 등 두 곳에서만 낙찰받아 136MW(약 24%)에 그쳤고, SK온은 한 건도 확보하지 못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비가격 지표 비중 커진다

1차 입찰 결과를 두고 “삼성SDI는 울산 생산으로 점수에서 유리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 생산이 불리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전력거래소는 “최종 셀 조립지가 국내에 있는지는 평가위원에게 참고자료로 제공됐지만, 이를 점수화해 배점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즉, 국내 생산 여부가 직접적인 점수 차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력거래소는 최근 1차 입찰에서 가격 편중이 드러났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조세철 전력거래소 선도시장팀장은 지난 19일 열린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간담회에서 “입찰 결과를 분석한 결과 비가격 평가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했다”며 “2차에서는 비가격 지표를 강화해 평가 균형을 맞추겠다”고 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차 입찰에서 사업자 간 가격 점수는 최소 33점에서 최대 60점까지 벌어져 편차가 27점에 달했지만, 비가격 점수는 24~33점에 그쳐 평균 9점 차이에 불과했다. 사실상 가격 점수가 승패를 갈랐다는 의미다.

2차 입찰에서는 가격과 비가격 배점이 현재 60대 40에서 50대 50 수준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이는 확정이 아닌 검토 단계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점수를 늘리기 위해 새 지표를 도입하는 것은 현재로선 확정된 바 없다”며 “기존 항목 가운데 변별력이 떨어진 부분은 줄이고, 강화할 부분을 보강하는 식으로 손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경제 기여도의 경우 단순한 공장 위치 외에 공급망 기여도나 유지보수 역량까지 평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세부 배점과 방식은 입찰 공고가 나와야 확정된다.

이르면 내달 공고될 2차 ESS 입찰 물량은 총 540MW 규모로, 육지 500MW와 제주 40MW로 분리해 진행된다. 준공 기한은 2027년 12월이다. 입찰 단위와 절차는 1차와 동일한 틀을 유지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ESS용 LFP 롱셀 배터리. /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ESS용 LFP 롱셀 배터리. / 사진=LG에너지솔루션

◇ LFP vs NCA, 정면 충돌 예고

삼성SDI는 1차전에서 승리를 안긴 삼원계(NCA)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울산공장 생산 물량으로 국내 산업 기여도 점수를 확보할 수 있고, 에너지 밀도와 기술력도 강점이다. 다만 저가 전략을 반복할 경우 수익성 악화 우려가 남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리튬인산철(LFP)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ESS 시장에서 LFP 채택이 늘고 있는 만큼 두 회사는 국내 생산 전환을 통해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오창 공장 일부 라인 전환을, SK온은 충남 서산 전기차 라인 일부를 ESS 전용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7년 준공 기한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물리적 전환은 가능하지만, 국산화율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배터리 3사가 ESS 수주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직결된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대규모 해외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반면 ESS는 낙찰 시 설비 구축부터 운영·유지관리까지 15년간 안정적 매출이 발생한다. 전기차 수요 변동과 무관하게 장기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터리 3사에겐 매출 공백을 메울 새로운 먹거리다. 시장 전망도 밝다. 한국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2.9%로 확대할 방침이어서 ESS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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