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실적부진에 AI 산업 수익성 우려 확산
HD현대 "불확실성 증대···내실 다져야"
데이터센터 외 수요 견조, 전력망 교체 수요·ESS 시장 성장세
"당분간 공급자 우위 시장, 피크 걱정 일러"

HD현대일렉트릭의 전력 변압기. / 사진=HD현대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의 전력 변압기. / 사진=HD현대일렉트릭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인텔 등 빅테크 기업이 예측을 하회하는 2분기 실적을 기록하면서 AI(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투자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신·증설로 쏟아지는 주문을 받았던 변압기 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업계는 AI 데이터센터 외에도 글로벌 노후 전력망 교체·에너지저장장치(ESS)용 변압기 수요가 견조한 데다 수요 대비 공급량이 턱없이 모자라 '슈퍼사이클'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9일 증권가에 따르면 월가에선 AI 기술주가 고점을 찍었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인텔을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다소 저조한 올 2분기 실적을 공개하면서 AI 산업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면서다. 최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주주 서한을 통해 “엔비디아는 거품 상태”라며 “AI 붐은 과장돼 있다”고 평가했다.

AI 산업의 수익성 개선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 대형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은 지난 6월 “AI 반도체 시장에 투입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시장 규모가 약 6000억달러(831조원)에 이르러야 한다”며 “하지만 올해 1000억(136조원)도 벌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I 투자비용과 실제 수익 사이의 큰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AI 투자에 대한 수익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IT기업들이 투자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수백조 단위로 AI 관련 투자를 집행해오던 MS,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투자 행보가 꺾이면, 후방산업인 반도체, AI 데이터센서 산업의 성장세도 한풀 꺾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변압기 업체들에 대한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도 제기된다. 변압기는 송전 과정에서 전력 손실을 줄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역할을 해 AI 데이터센터 건립의 ‘필수재’다. 

변압기 업계도 위기를 감지한 모양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지난 7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고 이와 관련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미국발 경기침체,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변압기를 비롯한 HD현대의 건설기계·정유 사업에 미칠 영향을 재검토한 것. HD현대는 국내 초고압 변압기 1위 업체인 HD현대일렉트릭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권 회장은 이 자리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경영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다만 여전히 업황은 견조하다. 공급자 우위 시장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AI 거품론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글로벌 전력망 교체 수요는 여전히 건재한 데다, 전방산업인 ESS(에너지저장장치), 전기차 충전소 설치량도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2분기 북미 지역 변압기 수출 호조에 따라 영업이익 2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컨센서스를 70% 웃도는 수치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 하반기 실적도 우호적일 것으로 보고 생산시설을 확충한다. 회사는 지난해 울산과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각각 272억원, 180억원을 투자했다. 울산 공장 증설은 오는 10월 중 완료된다. 미국 공장까지 고려하면 증설 이후 연간 매출은 2200억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추가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효성중공업은 지난 2020년 인수한 미국 멤피스 생산기지 증설을 마쳤다.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지만, 일감은 쌓이고 있다. 국내 변압기 3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모두 3년치 이상 일감을 확보해뒀다. 올 2분기 기준 HD현대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52억52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1.1% 증가했다.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각각 2조8000억원, 6조6000억원의 수주잔고를 기록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력기기 수요는 큰 폭으로 늘지만, 업계 대응은 과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업체들의 공격적 투자가 시작되면서 향후 공급 과잉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그 단계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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