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 행정부에 보조금 제외되는 '해외우려기업(FEOC)' 구체적 정의 요청 의견서 제출
"중국, 배터리 공급망 장악하고 있어 배제 불가능···FEOC에 중국 포함할 시 공장 가동 불가능해"
미국 내 韓-中 경쟁 예상돼···K배터리, 양산능력·기술개발로 선제적 대응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위주의 미래 산업 공급망 재편에 나섰지만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면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들 또한 배터리 생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한국 정부는 의견서를 통해 “배터리 산업 고유의 복잡성과 글로벌 상호 의존도를 고려해달라”며 미국의 탈중국 행보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만 IRA의 해외우려기업(FEOC) 규정이 느슨해지면 미국 내 한국과 중국의 배터리 주도권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업계는 예상한다.

◇공급망 꽉 쥔 中, 결국 美 배터리시장 입성?

20일 미 정부 관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최근 미 재무부의 IRA 세부 규정안에 대해 “투자의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IRA상 요구 사항을 명확히 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FEOC 규정을 조속히 제공해달라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미국이 FEOC 규정을 통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면 국내 배터리 기업도 타격이 클 것으로 판단해 이 같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배터리 핵심 광물부터 배터리 셀에 이르는글로벌 공급망을 중국이 꽉 쥐고 있어서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 정책센터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리튬 생산량의 60%, 음극재·양극재 75%, 배터리 셀 공급의 7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공개한 IRA 백서에서 FEOC에 조달한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사용을 금지했다. FEOC에 대한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올해 3월 공개된 IRA 세부지침 FEOC 규정에 중국 기업이 다수 포함될 수 있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관련 언급은 없었다.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FEOC 규정을 두고 국내 배터리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업계는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고는 배터리 산업이 굴러갈 수 없다”고 얘기한다. 당장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원재료 공급망이 무너지는 것부터 합작법인(JV) 등을 통해 중국과 구축한 협력관계 또한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과 JV을 통한 배터리 소재 생산을 협력하고 있다. LG화학, 포스코퓨처엠은 각각 중국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국내에서 전구체 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에코프로와 SK온은 중국 거린메이(GEM)와 합작해 전구체를 생산한다. 중국의 뛰어난 원자재 수급 능력이 이들 합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중 전구체 합작 사례.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한-중 전구체 합작 사례.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다만 최근에는 중국을 대하는 미국 정부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다. 향후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자국 이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실리적 판단을 내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 내에서도 IRA를 통한 중국 배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다. 

가장 큰 변화는 중국 배터리 업체의 미국 진출 움직임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 4대 배터리 업체 중 한 곳인 궈시안(고션하이테크)은 미국 내 리튬인산철(LFP) 공급을 위한 양극재, 음극재 공장 건축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는 지난 2월 중국 CATL과 합작해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책 변화에 FEOC 규정이 느슨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이 FEOC에 중국을 포함하면 결국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다 멈추게 된다”면서 “(미 재무부는) FEOC에 중국 기업들을 포함하지 않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GM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 /출처=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GM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 /출처=LG에너지솔루션

문제는 미국이 '탈중국' 기조에 변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 시장 무혈입성을 전망했던 국내 배터리업계가 중국과 치열한 점유율 싸움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해 구축한 양산능력으로 이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 단독 공장, 제너럴모터스(GM) 합작 1·2·3 공장 등을 통해 오는 2026년 293GWh까지 생산능력을 늘릴 방침이다. SK온은 포드·현대차와 합작을 통해 185.5GWh 물량을 확보했다. 삼성SDI는 스테란티스·GM과 JV를 통해 63GWh 규모의 양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대부분 중국 업체들의 미국 내 양산 시점이 2027년 이후로 예상되는 만큼 2025년 500GWh 이상 규모를 갖춘 국내 배터리 업계를 따라잡기란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주력 제품인 LFP 양산화 계획을 밝히면서 중국 업체와 경쟁을 본격화할 채비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에 세계 최초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전용 LFP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SK온도 미국 내 ESS 생산시설 건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늦게 LFP 개발 대열에 합류한 삼성SDI는 지난 14일 독일 뮌헨에서 개막한 ‘인터배터리 유럽 2023’에서 LFP 배터리 시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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