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해외우려기관’ 범위 확대 촉각
한중 합작법인 지분 조정 안전장치 마련해 둬
"中 공급망 영향 벗어나기 힘들어"···규제 완화 예상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 뒤로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 뒤로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배터리업계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규정 발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SK온, 에코프로, 포스코홀딩스, LG화학 등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기업과 전구체, 양극재 등 핵심 소재 사업을 위해 다수의 합작법인을 설립했는데, 이들 법인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수천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재무부는 이르면 1일(현지시간)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되는 FEOC에 대한 세부규정을 발표할 계획이다. 오는 2024년부터는 FEOC가 생산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2025년부터는 FEOC가 채굴·가동·재활용한 핵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FEOC 규정에는 우선 중국 국영기업의 배터리나 부품, 핵심광물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IRA 백서에서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북한·이란이 소유하거나 관할·통제하는 기업을 FEOC로 지정한 바 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한·중 합작법인도 해외우려기업 대상되나

배터리업계가 우려하는 첫 번째 지점은 중국 기업이 지분을 투자한 법인에 대한 미국 재무부의 판단이다. 중국 정부나 민간 기업이 어느 정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FEOC 선정 여부가 갈릴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중국과 10곳이 넘는 합작법인을 설립, 배터리 소재 부문 투자를 가속화해왔다. 중국 업체들이 보유한 배터리 핵심광물에 대한 채굴·정련 관련 노하우가 필요한 한국과 IRA에 가로막힌 수출길을 확보하고자 하는 중국의 수요가 겹치면서다. 

SK온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중국 거린메이(GEM)와 손잡고 1조2100억원을, LG화학과 화유코발트는 1조2000억원을 들여 전북 새만금 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은 CNGR과 함께 경북 포항에 1조5000억원을 들여 니켈·전구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엘앤에프는 시노리튬머티리얼즈와 대구에 수산화리튬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중국과 함께하는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배터리업계뿐만 아니라 글로벌 배터리 산업이 코발트, 흑연, 리튬 등 배터리 핵심광물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 공급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구조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과 교수는 “IRA는 중국 배제가 아닌 미국 배터리 산업 육성에 더 방점이 찍힌 법안”이라며 “미국이 IRA를 통해 중국과의 합작법인까지 규제하게 되면 미국의 배터리 산업 전반이 멈추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분율을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IRA 완화를 뜻한다고 봐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서 한·중·일 기업 간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FEOC 규정이 중국 기업의 지분율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피해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앞서 발표된 미국 반도체법은 중국 기업이 지분 25%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할 경우 FEOC로 지정하고 있다. 다만 IRA의 경우 국가안보 정책으로 규정한 반도체법보다는 느슨한 규정이 적용될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 설립한 한·중 합작법인의 상당수는 중국 업체 지분율이 5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중국과 합작법인 설립 전 단계부터 FEOC 리스크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뒀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합작법인의 경우 통상 50대 50으로 지분을 나눠 투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며 “LG화학, 포스코홀딩스 등 국내 업체들은 IRA 요건에 따라 지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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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IRA 우회 진출 막히나···CATL·포드 합작사 운명은

중국 기업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기술로 제작한 배터리가 보조금 대상이 되는지도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CATL이 기술 이전 방식으로 포드 자동차와 합작사를 설립한 이후 중국 배터리셀 업체의 북미 진출 사례가 늘고 있다. 포드와 CATL은 합작사에 대한 미 의회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공장 건설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중국 업체가 지분을 가진 합작사의 FEOC 제외 여부다. 미 재무부가 중국의 지분 투자를 인정한다면 기술 합작 방식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 교수는 “세부규정에서 중국 지분을 보유한 합작사 제품을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인정한다면 중국의 셀 업체들 또한 인정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면서 “기술 합작만 막는다면 정책 일관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미 재무부가 FEOC 세부규정에 대한 유예기간을 부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중국의 공급망 의존도를 고려했을 때 유예기간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예상보다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세부규정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부품은 2024년, 배터리 핵심광물에 대해선 2025년부터 관련 규정이 적용되는데 1~2년의 준비 기간이 더 생긴다 하더라도 업계 내 영향력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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