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속도내는 SK온, 美 천연흑연 3.4만t 확보
IRA FEOC 규정·中 수출 통제 대응 역량 확보 나선 K배터리
여전히 높은 中 의존도···업계·전문가 "IRA 규정 완화 필요해"

포스코퓨처엠 포항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 / 사진=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 포항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 / 사진=포스코퓨처엠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흑연 물량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수출 통제 리스크를 대비함과 동시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준을 맞추기 위한 움직임이다.

다만 흑연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여전히 90% 이상에 달해 100% 비중국산 핵심광물 사용을 요구하는 IRA 기준을 오는 2025년까지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전날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흑연 채굴업체 웨스트워터리소스(웨스트워터)와 천연흑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웨스트워터는 오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 동안 앨라배마주 정제 공장에서 생산한 천연흑연을 SK온 미국 공장에 공급한다.

이번 계약을 통해 SK온이 확보할 수 있는 천연흑연은 최대 3만4000톤(t) 수준이다. 이는 전기차 42만여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SK온은 향후 북미 자동차 시장 성장 속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매 물량을 조정할 방침이다.

흑연 공급망 다각화는 배터리 업계 발등에 당장 떨어진 불이다. 비상이 걸린 기업들은 중국산이 아닌 흑연을 확보하기 위해 호주, 북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활로를 찾고 있다. 

우선 IRA 대응 역량이 중요해졌다. IRA에 따르면 2025년부터 배터리 핵심광물을 해외우려단체(FEOC)로부터 조달할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FEOC로 규정된 중국 기업이 생산한 광물을 사용해선 안 된다. 미국 흑연 업체와 계약을 맺은 SK온 측은 “이번 계약은 미국산 흑연 확보를 통해 IRA 대응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배터리의 20% 이상을 구성하는 흑연은 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은 광물이다. 

구형흑연(흑연 광석을 가공한 중간연료) 생산의 100%, 완제품인 음극재 생산의 약 85%를 중국이 맡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9월 기준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천연흑연이 97.7%, 인조흑연이 94.3%로 사실상 전량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역시 음극재에 들어가는 흑연 사용량의 90% 이상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흑연 원료를 수입해 가공하거나, 중국 현지에서 제조한 음극재를 직접 수입하기도 한다. 

넘어야 할 산은 더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부터 흑연 수출 통제에 들어갔다. 흑연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흑연 자원을 무기화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흑연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지 금지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출 통제가 실행되기 전보다 통관 절차가 길어지면서 흑연 수급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이 수출 신청 건마다 심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 흑연계 음극재 생산 업체인 포스코퓨처엠은 난감한 처지다. 새해 들어 중국이 고순도 흑연 수출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심사가 진행 중에 있어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당국이 언제든지 흑연 수출 심사를 통해 한국 기업의 목줄을 쥘 수 있다는 게 업계 우려다. 현재는 글로벌 전기차 산업 성장세가 꺾이면서 중국 내 흑연 재고가 남아 수출을 허가하고 있지만, 향후 중국 내 흑연 수요가 살아나면 언제든지 수출에 제동을 걸 여지가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흑연 확보에 있어 완전한 탈중국이 가능할까. 비(非) 중국산 흑연 확보가 더욱 절실해졌지만, 업계는 이른 시일 내 완전한 탈중국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SK온 관계자는 “웨스트워터와 계약한 흑연 물량으로 북미 공장 수요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배터리 업계가 흑연 공급망 다각화에 나섰지만 수입량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22년 기준 대중국 흑연 수입량은 천연흑연 5만3000t, 인조흑연 4만8200t에 이른다. 

결국 중국산 흑연 수입량만큼 비 중국산 흑연을 가져와야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매년 10만t이 넘는 국내 수요는 배터리 업체들의 북미 현지 공장 가동에 필요한 흑연 수요는 제외한 양이다.

천연흑연 대체재인 인조흑연은 국내 생산이 가능하지만, 국내 유일 인조흑연 생산업체인 표스코퓨처엠의 연간 생산량은 8000t 가량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인조흑연 생산량을 오는 2026년 5만8000t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생산 과정상 비용이 많이 들어 가격 책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온 열처리 과정에서 전력 소비가 큰 데다 전기료 또한 중국보다 비싸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힘들다. 

업계는 자체적으로 흑연 확보에 나서면서도 미국 정부에게 중국 의존을 낮추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를 비롯해 배터리 3사는 한시적으로 흑연에 대해선 FEOC 세부규정 적용을 유예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리튬은 칠레나 호주 등에서도 생산되지만, 흑연은 중국 생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당장 대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점을 미국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FEOC 규정에 막혀 국내 업체가 배터리를 생산하지 못하면 미국 완성차 업체도 나아갈 수 없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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