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 2050년 이전 ‘RE100’ 선언했거나 참여 검토 중
“탄소중립, 최우선 과제 어려워···중장기적 저감책 중요”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핵심 의제인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세계 주요국은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자동차 확대를 통해 탄소 저감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0년 10월에 탄소중립 비전을 밝혔고 국내 기업들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일환으로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업종별 산업 동향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제조업계는 공정 개선과 고효율 설비 도입 등을 통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이노텍 등 주요 기업은 공정가스 절감, 재생에너지 전환, 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CUS) 기술 등을 활용해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이룬단 목표다.
다만 삼성전자와 LG이노텍 등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수요 증가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어 온실가스 저감이 쉽지 않단 지적이다. 친환경 공정 개발에는 장시간이 필요한 만큼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저감 설비 확장에 집중한 이후 단계적인 공정 전환이 필요하단 분석이다.
◇대체 공정가스 개발·에너지 효율화·재생에너지 전환 ‘주력’
18일 제조업계에 따르면 각 업종의 대표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국제 약속인 ‘RE100’에 가입했거나 동참할 전망이다. LG이노텍은 2040년, 현대자동차는 2045년, SK하이닉스는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도 연내 가입을 검토 중이다.
반도체, 자동차, 전자부품 등 산업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탄소 저감 필요성이 높은 업종으로 꼽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반도체와 전자부품 제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7년 기준 제조업 부문 6위와 7위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자동차 산업은 운행과 생산 부문에서 1억140만톤(t)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14.3%를 차지했다.
반도체업계는 탄소를 유발하는 공정가스 대체재를 개발하고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온실가스 저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높은 공정가스인 사불화탄소(CF4), 플루오로포름(CHF3), 헥사플루오르부타-1,3-디엔(C4F6), 육불화황(SF6) 등의 온실가스 대체제를 개발 중이다. 공정가스 처리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 회생촉매시스템(RCS) 처리 시설을 추가 설치하고, 공정가스 투입량도 최소화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공정가스 저감 설비인 친환경 스크러버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있다. 공정가스 분해를 위한 3단계 스크러버 처리 절차인 ‘질소산화물 저감(De-NOx)’과 ‘암모니아 저감(De-NH₃) 시스템’ 등을 국내 사업장에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이같은 스크러버 장비를 활용해 지난 2020년에 229만5341이산화탄소환산톤(tCO2eq)의 온실가스를 저감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신규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필수적으로 설치하고 고효율 모터와 인버터를 적용해 친환경 공장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CCUS 기술 상용화 목적으로 자체 연구소에서 시장 모니터링과 기술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LG이노텍은 회사 온실가스의 90% 이상이 전력 사용 과정에서 배출되는 만큼 재생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 올해 탄소중립 달성률 20%를 이루고, 2030년에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단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압축공기를 사용하지 않아 에너지 절감에 유리한 넌퍼지 드라이어와 고효율 냉동기 등의 설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탄소 배출량, 전년 대비 증가···“분위기 바뀌는 추세”
그러나 주요 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 추세다. 삼성전자와 LG이노텍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각각 1740만톤과 36만7099톤으로 전년 대비 각각 17.5%, 4.87% 늘어났다. 같은 기간 탄소 배출량이 많은 민간기업 상위 30곳 가운데 22곳의 배출량도 전년보다 증가했다.
탄소중립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고 제품 생산량 자체가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도 많아지고 있단 분석이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반도체는 수요가 늘고, 더 많은 공정가스와 전력을 필요로 하는 미세공정이 증가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기업들도 감축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대체 공정가스 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리고 적용에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2020년 웨이퍼 면적당 탄소 배출량은 2010년 대비 9% 정도 감소했다. 2030년까지는 가스 대체보다는 저감 장치 적용 확대를 통해 가스 분해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이 ESG 경영이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과제라는 건 틀림없지만, 최근 공급망 문제나 경기 침체 문제가 대두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며 “기업들이 최우선 과제로 살피기는 어렵고 현실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저감 방안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