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탄소중립위원회 경제산업분과위원장
“기업, 탄소중립 인식 개선 이루고 중장기적 투자 계획 수립해야”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기후위기 대응 핵심 의제인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세계 주요국은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자동차 확대를 통해 탄소 저감에 나서고 있고,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들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탄소중립에 동참하고 있다. 이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업종별 산업 동향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최근 중부지방 집중호우 수해도 기후위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과 정부, 시민 개개인이 경각심을 갖고 지혜를 모은다면 2050 탄소중립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김정인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경제산업분과위원장(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은 “탄소 중립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로 정부는 합리적인 제도 개선으로 뒷받침하고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기술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기후변화, 에너지, 과학기술 등 각종 분야의 탄소중립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이중 경제산업위원회는 고탄소 산업 전환과 저탄소 산업 육성, 재정‧세제‧금융 지원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은 주요 연구 분야가 녹색성장론인 환경경제학 전문가로 환경부 지속가능위원회 위원, 국가기후환경회의 분과위원, 한국환경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경제산업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키로 했다. 김 교수는 정부·기업·시민의 삼박자가 갖춰지면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이룰 수 있다고 전망했다. NDC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중간 목표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일각에서는 NDC 목표치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달성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NDC가 상당히 과감한 목표인 건 맞다. 그러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정부가 과감한 기술 혁신과 R&D 투자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면 가능하다. 2050 탄소중립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다양하고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접근해야 하는 과제다.
-제도 개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에너지 부문에서 다양성을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태양광 보급 확대만 강조하는데, 각각의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장점과 한계가 있는 만큼 수력·풍력·바이오매스(생물 에너지원)·수열에너지 등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
수송 부문에서도 지금은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졌지만, 내연기관차를 당장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연료를 점진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활용하는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에탄올 등의 바이오연료는 내연기관차에 쓰일 경우 유해물질 발생을 줄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많이 쓰지 않는다.
바이오연료는 미국이나 남미에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내연기관차가 친환경차로 대체되기 전까지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바이오연료 확대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도 있지만, 미국에서 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실증 자료가 나왔다. 바이오연료 사용량이 늘어나면 오히려 옥수수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
-기술 혁신은 어떤 부분인가
앞서 설명한 재생에너지 범위 확대, 바이오연료 기술력 개발 등이다. 정부는 기술 혁신에 나서는 기업들에게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재정 지원도 과감하게 해야 한다. 가령 SK케미칼이나 LG화학이 친환경 촉매 기술 공동 개발에 나선다면 세제 지원을 늘려 민간의 R&D 역량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공동 R&D를 하면 비용 절감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또 실제로 사업 아이템 발굴이나 실증 결과가 더 좋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이를 장려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와 민간이 R&D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탄소중립은 긴 호흡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부와 기업은 각각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정부는 R&D 자금과 기후대응기금 편성을 확대하고 왜곡된 전기요금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요금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 개발이 상대적으로 더딘 측면이 있다. 전기요금 인상을 주장하면 소비자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현실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력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 획기적인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R&D 투자를 늘려야 한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환경을 외면하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고 확실히 느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나 세계에너지포럼에서도 기업 운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후위기 대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중장기 R&D 계획을 세우면서 미래 기술을 빨리 확보하는 투자에 나서야 한다. 금융권에서도 녹색금융을 중요한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어서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은행으로부터 투자 유치가 유리해질 것이다.
-탄소중립에 임하는 국내 기업들의 자세를 어떻게 평가하나. 해외 기업과 비교한다면
과거와 달리 중요성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부족하다고 본다. LG나 SK는 그룹 차원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탄소중립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기업의 인식 개선을 위해 시민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들도 개개인 차원에서 탄소중립에 동참하는 일원으로 기업과 정부의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참여의식이 조금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일반 전기요금보다 5~10% 정도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하고 그 비용을 신재생에너지 공급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인 녹색가격제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걸 활용하는 인구는 20% 미만이다. 물론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구를 위해 더 높은 전기료를 부담하는 건 쉽지 않지만, 시민들의 인식 전환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한 중장기적인 홍보 활동이나 시스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산업구조 혁신도 중요 과제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인데 산업 내 구조조정과 산업 간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전자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정유, 철강 산업의 경우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집중해서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방법이다. 정유 산업은 기존 휘발유나 디젤이 아니라 바이오에탄올이나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후자는 업종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려면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정유와 화학 산업 등은 다른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신사업 인력 수급 방안이나 산업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한 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대기업은 산업 구조조정과 온실가스 저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역량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다르다. 중소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소기업은 집단별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안산 시화공단에는 도금, 인천 남동공단에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 많다. 해당 지역은 공통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연구기관에서 탄소 배출 저감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재원 문제인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을 재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일본이나 대만은 강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갈 수 있도록 소기업 기술 개발과 지원 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정책 관련해서 정부는 원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원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중립적인 입장의 전문가와 시민들을 초빙하고 원전 활용 방안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사회적인 협의 과정이 순탄치 않으면 국민투표에라도 부쳤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확실한 합의에 도달하면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연속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다.
-앞으로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가
가장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숙고해서 만든 정책과 계획을 5년마다 바꾸게 되면 국제적인 신뢰를 잃을 수 있고, 거기에 맞춰서 계획을 세운 기업들도 혼란을 겪게 된다. 탄소중립 정책만큼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림 없도록 추진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