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회장,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심사 늦어지는 공정위에 쓴소리
조현아 전 부사장, 한진칼 지분 4.44%까지 떨어져···경영권 분쟁 사실상 종료
공정위, 1~2위 항공사 통합에 따른 독과점 우려
업계 “아시아나 무너지면 결국 대한항공이 대체···포스트코로나 수요 대비해야”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최근 들어 희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직접 나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속한 시일 내 기업결합심사 결론을 내릴 것을 촉구한데 이어, 경영권 다툼을 하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한진칼 지분 매각을 하며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 종결됐다.
또한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화물사업을 통해 흑자기조를 이어가면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늦어져 양사 통합이 지연될 경우,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제 때 대응하지 못해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동걸 회장은 지난 13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공정위에 쓴소리를 날렸다.
이 회장은 “EU 경쟁당국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를 규제하려고 하면 미국 당국이 보호하고 나서는데, 우리는 다른 곳 하는 것을 보고 기다리는 것 같아 섭섭하고 유감스럽다”며 “공정위가 다른 경쟁당국도 직접 설득해주고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에 괘씸죄로 걸릴지 몰라 조심스럽다”면서도 “한국 항공산업 생존과 글로벌 시장 경쟁력 확보 차원을 위해 긍정적으로 봐달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앞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시절에도 조원태 회장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은 KCGI·조현아·반도건설 3자연합과 조 회장이 경영권을 다툴 때 강성부 KCGI 대표에 대해 “자기 돈 한 푼 없이 남의 돈으로 영업하는 사람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냐”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산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과정에서 한진칼에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투입하며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며 조 회장의 우군이 됐다.
산은의 지분 확보와 정기 주총에서 3자연합 측 대패가 이어지면서, 3자연합은 사실상 와해 수순으로 흘러갔다.
이에 따라 3자연합 주축 중 하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경영에 참여하지 못해 별도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됐으며, 매년 100억원가량의 상속세 납부 등 현금난이 가중되면서 한진칼 지분 매각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지난 5월 10일부터 이달 7일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한진칼 주식 64만주를 매도했으며 지분율은 4.44%까지 떨어졌다.
조 회장은 산은의 든든한 지원과 함께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아시아나 통합 이후 세계 10대 항공사 오너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변수는 공정위다.
공정위는 지난 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한 경제분석 연구 용역을 발주한 후 계약기간을 당초 6월에서 10월 말로 연장했다. 두 항공사간 통합에 따라 항공운임 인상 가능성이 있는지, 소비자 마일리지 혜택이 줄어들 우려가 있는지 등 경쟁제한성 여부에 대해 조사할 범위가 넓었기 때문이라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공정위는 연구 용역을 마친 뒤 통합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1~2위 항공사의 통합인 만큼 공정위 입장에선 독과점 우려에 대해 신중한 모습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에 따라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운항 점유율 50% 이상)은 양사 운항 노선의 22.4%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LA, 뉴욕, 시카고, 바르셀로나, 시드니, 팔라우, 프놈펜행 등 7개 노선은 양사 점유율이 100%에 달했으며 호놀룰루, 로마, 푸켓, 델리 노선도 점유율이 75%에 달한다.
공정위가 신중한 것은 앞서 현대차·기아 합병 사례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 합병 당시 공정위는 신규 사업자 진입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 기아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최종 인수를 승인했다. 하지만 이후 현대차그룹의 국내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하며, 올 상반기에는 국내 완성차 내수 판매의 88%를 차지했다. 이에 공정위 내부에선 업계 1~2위 회사 합병에 대해 내부 성찰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측은 기업결합심사의 경우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해외 당국들이 많아, 이들과 계속해서 논의·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양 사 통합을 위해 필수적으로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 곳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EU, 대만, 터키, 베트남, 태국 등 9개국이며 이 중 대만, 터키, 태국 등 3개국은 승인을 완료했다.
일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권이 양사 합병 결정에 부담을 느껴 차기 정부로 넘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이 어쩔 수 없는 수순인데, 시간을 끌어봤자 국내 항공산업 발전만 저해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가 HDC현산과의 합병 실패 이후, 사겠다는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마무리 되지 않으면 자생은 불가능하다”며 “아시아나가 무너진다면 어차피 그 자리는 대한항공이 대체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스트코로나 이후 항공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전에 양 사 통합을 마무리 짓고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