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 이사 기준 강화·사외이사 후보 추천···2년 전 부결된 내용과 같아
경영권 분쟁보다는 엑시트 쪽 무게 실려···펀드 만기 도래 및 주가 추가 상승 여력 적어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한진칼 주요 주주인 사모펀드 KCGI가 3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제안에 나섰다. 이번 주주제안과 관련, 일각에선 KCGI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또 다시 경영권을 두고 표대결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재계 안팎에선 KCGI가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KCGI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한진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전자투표 도입, 이사자격 기준 강화, 서윤석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을 제안했다.
갑작스런 KCGI의 주주제안에 대해 업계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KCGI는 지난해 주총을 앞두고 주주제안을 포기한 바 있다. 특히 이번 주주제안 내용은 2년 전인 2020년 주총에서 KCGI가 요구한 내용과 대부분 비슷하다. 당시 KCGI는 주총에서 단 1건의 안건도 통과시키지 못한 바 있다.
2020년 3월 주총에서 KCGI가 제안한 정관 변경안에는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되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회사의 이사가 될 수 없으며, 이사가 된 이후에 이에 해당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진그룹 일감 몰아주기 조사 건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조원태 회장을 겨냥해 정관 변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사자격 기준 강화와 전자투표제 도입 모두 주총에서 반대표가 절반이 넘어 부결됐다.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도 KCGI 측이 제안한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여은정 중앙대 교수·이형석 수원대 교수·구본주 법무법인 사람과 사람 변호사 등 4인은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번 주주제안에 대해 일각에선 KCGI가 경영권 분쟁에 다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KCGI는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으나, 지난 2020년 말 산업은행이 한진칼 주요 주주로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 동력을 상실했고, 이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분을 매각하면서 사실상 3자 연합은 와해됐다.
현재 지분율만 보면 조 회장 우호 지분은 32.06%, KCGI와 반도건설 지분은 34.44%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10.58%의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이 조 회장 우군으로 등장하면서 사실상 KCGI는 지분경쟁에서 밀리는 구도다.
이에 재계 안팎에선 KCGI의 엑시트 시점이 가까워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KCGI가 한진칼 경영권 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익을 챙겨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엑시트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2018년 KCGI가 한진칼 지분 9%를 사들일 당시 매입단가는 2만4557원이었으나, 현재 한진칼 주가(전일 종가)는 5만7100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KCGI 평균 매입단가가 3만원 초반대라고 가정하면, 수익률은 70%를 넘는 셈이다.
또한 최근 KCGI 산하 특수목적법인(SPC) 펀드 만기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 엠마홀딩스, 헬레나홀딩스, 디니즈홀딩스, 베티홀딩스, 캐트홀딩스, 캐롤라인홀딩스, 타코마앤코홀딩스 등 8곳의 SPC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엠마홀딩스는 지난 1월 30일로 만기일이 지났으며 디니즈홀딩스(2022년 3월 13일), 캐트홀딩스(2022년 3월 26일), 캐롤라인홀딩스(2022년 3월 26일), 헬레나홀딩스(2023년 1월 10일) 등은 다음 달부터 만기를 앞두고 있다.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어 1년씩 총 2회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 청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칼 주가가 경영권 분쟁 때 만큼 급등할 가능성도 낮은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 담보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KCGI는 주주제안을 통해 주요 주주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명분을 챙기고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 형식으로 지분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한진칼 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을 염두하고 주주가치 제고를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출구 전략을 짜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강성부 KCGI 대표는 “주주제안과 엑시트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